김진현 이에이트 대표가 폭우가 내린 한 저수지에서 물의 흐름을 추적한 시뮬레이션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진현 이에이트 대표가 폭우가 내린 한 저수지에서 물의 흐름을 추적한 시뮬레이션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형 홍수나 산사태가 나 주변 주거지에 미칠 피해를 예상해 볼 수는 없을까. 세탁기 내부에서 세제가 물과 섞여 압력이 어느 정도일 때 세탁이 잘 될까. 폭우 속에서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제동 거리는 얼마나 될까. 이 같은 문제나 궁금증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해결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있다. 이에이트(E8IGHT)가 개발한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엔플로우(NFLOW)’는 3차원 공간에서 입자(particle)를 추적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입체 공간에서 개별 물방울이나 공기 입자의 이동 경로를 알 수 있다는 얘기다. 김진현 이에이트 대표(43)는 “제품 개발에만 5년의 시간이 걸렸고 연구개발 자금만 120억원이 들었다”며 “재해를 예방하고 제품 품질을 개선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시장은 앞으로도 유망한 성장 분야”라고 말했다.

50조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 낸 김진현 대표
시뮬레이션 SW개발에 5년 투자

영국 런던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현지 금융회사에서 근무하던 김 대표는 2012년 2월 우연한 기회에 한국을 찾았다. 기획재정부가 외국 투자자를 한국에 초대하는 ‘셀코리아’ 행사가 계기였다. 유럽 투자자들을 인솔했던 김 대표는 당시 공학용 소프트웨어업체 마이다스IT 협력사인 플랜E&S 조광준 대표(현 이에이트 부사장)를 만나면서 창업으로 진로를 틀게 됐다. ‘사업 아이템을 찾아 창업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에 꽂힌 것. 금융회사에 근무할 때 지멘스(독일) 앤시스(미국) 다쏘(프랑스) 등 글로벌 기업들이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기업을 경쟁적으로 인수하는 것을 보고 시장잠재력에 대한 확신도 섰다.

2012년 5월 회사를 창업한 뒤 10월부터 전산유체역학(CFD) 관련 소프트웨어 제품 개발에 나섰다.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의 투자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사업 아이템 가능성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제품 개발은 녹록하지 않았다. 김 대표가 5년간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투입한 돈은 벤처캐피털 유치자금 80억원을 포함해 120억원에 달한다. 김 대표가 2017년 말 엔플로우 개발에 성공할 때까지 수많은 좌절을 겪었다. 자금 조달뿐 아니라 스타트업에서 근무할 연구개발 인력 확보도 큰 문제였다. 김 대표는 “개발 과정이 길고 인력 확보가 힘들어 해외로 본사를 옮길까도 고민했었다”고 말했다.

“50조원대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겠다”

제품이나 구조물을 설계할 때 공기와 바람 같은 유체는 제품의 성능과 수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풍동실험, 수리모형 실험 등을 하는 이유다. 하지만 실물모형을 제작할 경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폐기에 따른 환경오염 등 간접적 비용까지 발생한다.

이에이트는 3차원 입자 방식을 도입한 CFD 소프트웨어를 내놨다. 2차원(평면)의 분할된 공간(격자)에서 상황을 예측하는 경쟁 제품보다 한 단계 앞선 기술로 평가받는다. 3차원 공간에서 1억 개 이상 입자를 생성하는 기술에 대한 특허도 받았다. GPU(그래픽처리장치) 고속 병렬처리 기술을 접목한 슈퍼컴퓨팅 기술을 적용, 계산 처리 속도도 빠르다. 김 대표는 “1억 개의 입자 흐름을 컴퓨터상에 시각적으로 구현해 질량 압력 등 다양한 물성에 따른 변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 이후 국립재난연구원이 첫 번째로 이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구입했고, 한국수자원공사도 엔플로우를 사용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과 세탁기 등 생활가전업체들도 적용 여부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적용 분야는 자동차, 토목, 건설, 가전, 해양, 기계, 화학 등 무궁무진하다. 소프트웨어 판매와 렌털 수입 등으로 지난해 매출은 30억원. 이 회사는 올해 130억원, 내년에는 200억원을 매출 목표로 잡고 있다.

김 대표는 상반기 싱가포르에 판매법인을 설립, 해외 진출의 교두보로 삼을 계획이다. 내년 하반기 목표로 코스닥 상장도 추진하고 있다. 김 대표는 “글로벌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가 50조원에 달한다”며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제품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