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원어민 영어강사가 학생들과 말하기 수업을 하고 있다.  /한경DB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원어민 영어강사가 학생들과 말하기 수업을 하고 있다. /한경DB
학교 영어교육 내실화 방안과 관련한 교육부의 연구용역을 수행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해 “학교 영어교육을 개선하려면 대학수학능력시험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바꿔야 한다”고 결론 낸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는 지난해 말까지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학교 영어교육 내실화 방안을 확정하기로 했으나 올해 새 학기가 시작되도록 아직 확정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대입제도 개편으로 홍역을 치른 뒤 대입제도에 대한 언급을 피하기 위해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교육부 '영어교육 내실화 방안' 낸다더니 감감무소식, 왜?
평가원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해야”

26일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학교 영어교육 내실화 방안’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김성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박사 등은 “학교 영어교육을 내실화하려면 수능 절대평가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보고서는 “현 정부 들어 새롭게 도입한 수능 영어 절대평가 제도는 사교육 경쟁과 학습 부담을 완화시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면서도 “반면 영어 학습에 대한 동기 저하, 학교 영어교육의 부실화 등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영어만 절대평가가 이뤄지는 것으로 인한 ‘풍선효과’를 차단하고, 절대평가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국어, 수학 등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향후 대입 영어의 역할, 절대평가의 개선 방향 등을 담은 심층적 연구가 필요하다”며 대입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후속 정책 연구를 제안하기도 했다.

수능 영어 영역은 2018학년도부터 절대평가로 전환돼 원점수 90점 이상이면 1등급을 받는다. 지난해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과정에서 수능 전 과목을 절대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영어와 제2외국어·한문 영역을 제외하고는 상대평가를 유지하기로 했다.

교육부 “상반기 중 확정안 낼 것”

당초 교육부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지난해 말까지 학교 영어교육 내실화 방안을 확정해 발표하기로 했다. 하지만 해를 넘기고 새 학기가 시작된 현재까지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올 상반기 중 발표할 예정인 확정안에는 수능 개편 등 대입 관련 내용은 담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관계자는 “확정안이 나오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긴 어렵다”면서도 “지난해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이 확정된 데다 대입은 워낙 민감한 문제라 내실화 방안에는 담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보고서를 바탕으로 현장 적용 가능성을 살펴보느라 정책 발표가 늦어지고 있지만 올 상반기 중에는 확정해 발표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보고서는 “중학교 1학년 단계에서 영어학습 체감 난도가 갑자기 높아져 학생 간 격차가 벌어진다”며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3월 초 1~2주간 방과후 수업 형태로 ‘중학영어 입문과정’을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초등돌봄교실을 영어학습이 이뤄지는 ‘영어 돌봄교실’로 전환하자는 내용도 담겼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일부 학생이 참여하는 방과후 수업 등의 형태보다는 정규 수업시간에 어떻게 영어교육을 내실화할 것인지를 중점적으로 논의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영어교육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면서 사교육 수요만 늘어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표적인 게 유치원, 초등 1·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논란이다. 지난해 초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자 교육부는 결정을 1년 유예하는 대신 정책연구, 자문단 회의 등을 거쳐 그해 말까지 학교 영어교육 내실화 방안을 확정하겠다고 공언했다. 교육부는 이후 기존 방침을 뒤집고 유치원은 지난해, 초등 1·2학년은 올해 방과후 영어수업을 허용했지만 정책 혼란은 학부모들이 사교육으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강모씨(36)는 “오락가락하는 공교육에 맡기느니 학원에 보내는 게 낫다고 판단해 일찌감치 영어 사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