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포스트 하노이 '불편한 진실'
베트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지 한 달이 지나면서 그동안 우리 정부가 얘기해온 것과 다른 ‘불편한 진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선 북한의 비핵화 의지. 우리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분명하다”고 공언해왔다. 하노이 회담의 뚜껑을 열어보니 아니었다. 북한은 이미 알려진 영변 핵시설만 폐기 대상으로 협상 테이블에 올리면서 미국에 사실상 거의 모든 유엔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그나마 영변 핵시설 전체 폐기 의사조차 막판까지 불명확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에서 북한의 제안을 수용했다면 미국은 영변을 제외한 나머지 핵·미사일 프로그램 폐기를 위한 지렛대를 상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통 크게 가자”며 빅딜을 요구하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거부했다. ‘핵이냐 경제냐’ 양자택일 대신 김정은은 ‘핵과 경제’ 둘 다 가지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북한 비핵화 의지 부족

둘째, 비핵화 정의. 우리 정부는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개념에 차이가 없다”는 식으로 설명해왔다. 하지만 역시 아니었다. 미국은 핵, 미사일뿐만 아니라 생화학무기까지 북한의 모든 대량파괴무기(WMD) 폐기를 비핵화 개념으로 내걸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비핵화 정의에 동의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비핵화 개념도 제시하지 않았다.

북한 실무협상단은 심지어 ‘비핵화’라는 말조차 함부로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비핵화 협상을 하면서 비핵화 정의조차 제대로 논의하지 못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다음은 한·미 공조. 우리 정부는 한·미 공조에 이상이 없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청와대는 하노이 회담 결렬 직전까지 회담 결과를 낙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여차하면 회담장을 그냥 걸어나오는 노딜은 예상도 못했다. 미국이 협상 카드 노출을 꺼려 ‘빅딜 아니면 노딜 카드’를 함구했다고 하더라도 미 정부의 기류조차 못 읽은 건 뼈아픈 대목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회담 결렬 직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얘기부터 꺼냈다. 미국이 제재 강화를 외치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달 초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워싱턴DC를 방문해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만나고 돌아간 뒤 미 국무부 고위당국자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검토하느냐’는 질문에 가차 없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노이 회담에 이어 회담 이후에도 연타로 한·미 간 균열이 노출된 것이다.

한·미 공조도 흔들

이뿐만 아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지난 12일 연례보고서에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과 제재 품목인 ‘번호판 없는 벤츠’를 타고 평양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는 사진을 넣었다. 미 재무부는 21일 대북제재를 발표하면서 동맹국 선박으로는 유일하게 한국 선적의 배를 요주의 대상에 올렸다. 물샐 틈 없는 한·미 공조와는 거리가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중재자론. 우리 정부는 북핵 협상에서 중재자를 자처했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북한은 “한국은 미국의 동맹으로, 중재자가 아니라 플레이어”라며 한국 때리기에 나섰다. 미·북 관계가 틀어지자 개성 남북연락사무소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해버렸다. 반면 미국 조야에선 “한국이 북한을 설득하기보다 동맹인 미국을 설득하는 데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러다 한국이 샌드위치 신세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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