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사가 생산직 신규 채용 규모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매년 정년퇴직자 수만큼 정규직 생산인력을 새로 뽑으라는 노조의 요구가 발단이 됐다. 회사 측은 추가 채용은커녕 기존 인력을 줄여야 할 판이라고 맞선다. 인력 충원을 둘러싼 갈등의 근본 원인은 전기자동차에 있다.

현대차는 앞으로 전기차 생산 비중을 늘려갈 예정인데,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구조가 단순해 생산 인력이 20~30% 덜 필요하다. 전기차 비중이 커질수록 잉여인력이 늘어나게 된다. 자동차업계 전문가들은 “해외 주요 자동차회사는 전기차 시대에 대비해 선제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갔다”며 “한국 완성차업체도 더 늦기 전에 인력 운영 계획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독] 전기차 시대 7000명 줄여야할 판에…현대차노조 "1만명 뽑아라"
“필요한 생산직 인력 빠르게 감소”

18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사측은 최근 노조 지도부에 “2025년이 되면 생산직 일자리 최소 7000여 개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생산량이 갈수록 늘어나는 데다 제조공정 개선 및 물류자동화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현대차 생산직 인력은 3만5000명이다. 기존 내연기관차 생산을 크게 늘리지 않는 한 2025년에는 생산직의 20%가량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현대차는 2025년 국내에서 약 45만 대의 친환경차량(하이브리드카, 전기차, 수소전기차 등)을 생산할 계획이다. 연간 현대차 국내 공장에서 조립하는 자동차(약 175만 대)의 25%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에 들어가는 모터는 내연기관차 엔진보다 생산하기가 훨씬 쉽다”며 “스마트팩토리 등 신기술이 도입되면 실제 1만 명 넘는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회사가 노조 측에 제시한 카드는 ‘생산직 퇴직자 대체 채용 중단’이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공장에서 필요한 인력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며 “2025년까지 인력을 충원하지 않는 게 살아남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년퇴직자 수 만큼 정규직을 새로 뽑다가는 결국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노사 모두 공멸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정년 연장까지 요구하는 노조

현대차 노조는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매년 정년퇴직하는 인원만큼 신규 채용을 하라고 주장한다. 회사와 단체협약 협상이 시작되면 정년을 만 60세에서 65세로 늘려달라고 요구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노조는 당초 2025년까지 1만7000여 명이 정년퇴직하기 ?문에 이만큼을 충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적어도 1만 명 이상을 새로 뽑아야 한다고 요구 수위를 낮췄다. ‘정년퇴직 등의 이유로 결원이 생기면 필요 인원은 정규직으로 충원한다’는 단체협약 조항(제44조)을 제시하며 회사 측을 압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노조 요구를 받아들이면 그만큼 연구개발(R&D) 인력을 충원하지 못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 전문가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독일 폭스바겐 등은 미래차 개발에 필요한 R&D 인재를 더 많이 뽑기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현대차 관계자도 “노조가 제시한 단협 조항은 인원이 필요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취지이지, 정년퇴직자 수만큼 더 뽑으라는 의미는 아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를 포함한 노동계도 전기차 생산 증가가 인력 수요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데 동의해 현대차 노조가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국금속노조와 현대차 노조, 기아차 노조는 지난달 ‘미래형 자동차 발전 동향과 노조의 대응’ 보고서를 통해 2030년 현대·기아차의 전기차 생산 비중이 25%에 달하면 생산직 근로자가 지금보다 5000여 명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 노조는 최근 노보를 통해 정년퇴직으로 해마다 조합비가 2억~3억원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를 내놨다”며 “자신들의 요구가 무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세 유지 등을 위해 생산직 신규 채용을 압박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