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들이 개교 이래 처음으로 청와대 앞에서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높여 달라”며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고시 낭인’을 없애겠다던 로스쿨 도입 취지와 다르게 변시 합격률이 점점 떨어지며 ‘변시 낭인’을 낳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반면 변호사단체들은 ‘공급 포화’ 등을 이유로 합격률을 더 낮춰야 한다고 반박 중이다. 올해 변시 합격률은 역대 최저치인 44%를 기록할 전망이다.

‘고시학원’ 전락한 로스쿨

"변시 합격률 높여달라"…집단행동 나선 로스쿨생
18일 전국법학전문대학원학생협의회(법학협)가 주최한 이번 시위에는 전국 25개 로스쿨 재학생 및 졸업생 700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변시 합격 기준을 현행 ‘로스쿨 입학정원 대비 75%’가 아닌 ‘응시자 대비 75% 이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해당 내용이 담긴 입법 청원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날 로스쿨 출신 변호사 250명도 청와대에 성명서를 전달했다.

변시 합격률이 떨어지면서 로스쿨이 사실상 ‘고시학원’으로 전락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석훈 법학협회장은 “합격률이 50% 미만으로 떨어진 지금 매년 1500명 이상의 변시 낭인이 양산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은 자신의 전문분야를 개발해 전문가로서의 기틀을 닦기보다는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공부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날 대회에 참석한 박기태 변호사(연세대 로스쿨 4기)는 “변시 객관식 O·X 맞히는 공부만 하려면 신림동 학원이 아닌 로스쿨을 만든 이유가 무엇이냐”며 “각 분야에 특성화된 법조인을 배출해 국민의 다양한 기대에 부응하는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합격률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로스쿨 교육 현장 곳곳에서도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란 도입 취지가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변시가 자격시험이 아니라 사실상 선발시험으로 변질되면서 과거 사법시험 체제와 다를 게 없어졌다는 지적이다.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는 “변시에 합격하기 위해 본인 적성이나 전문 분야를 고려하지 않고 일부러 점수를 얻기 쉬운 과목만 선택하는 학생이 대부분”이라며 “해외 연수나 모의 법정대회 같은 기회가 생겨도 공부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참가율이 낮다”고 털어놨다.

日 로스쿨 74개→37개 감축

변호사 단체들은 그러나 국내 송무시장이 포화 상태인 점 등을 감안하면 변시 합격자 수를 오히려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소속 회원 1인당 월평균 사건 수임 건수는 두 건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범석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은 “변리사 세무사 법무사 등 유사 직역이 존재하는 변호사업계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한 해 배출되는 변호사 수를 1000명까지 줄이고, 로스쿨 입학 정원도 1500명으로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보다 5년 앞선 2004년 로스쿨을 도입한 일본은 최대 74개의 로스쿨을 운영하다가 변호사 공급 과잉 등을 이유로 절반 수준인 37개로 줄였다,

2012년 첫 시행 후 매년 감소해 온 변시 합격률은 올해 44%로 역대 최저치를 찍을 전망이다. 합격자 숫자는 전체 로스쿨 입학 정원(2000명)의 75% 수준인 1500명 내외로 고정된 반면 매년 재시나 삼시에 응시하는 탈락자들로 응시자가 늘고 있어서다. 지난 1월 치러진 제8회 변시 합격자는 오는 4월 발표된다.

신연수/이인혁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