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부서류 미비·원안위 위원 2명 결격 인정…"취소할 필요성 적어"
"취소로 인한 건설중단 비용 1조 넘을 것…사회적 손실 크다"
법원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위법했지만 취소는 안 돼"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원전 지역 주민들이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허가를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냈으나 1심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한국수력원자력에 내준 원전 건설 허가 처분은 위법하지만, 공공복리 측면에서 허가를 취소할 수는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김정중 부장판사)는 14일 그린피스 등이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상대로 낸 신고리 5·6호기 원전건설허가처분 취소 소송에서 이런 취지의 '사정판결(事情判決)'을 내렸다.

사정판결이란 행정소송에서 원고의 청구가 이유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도 그 처분을 취소하는 것이 현저히 공공복리에 적합하지 않다면 법원이 청구를 기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행정소송법 제28조 1항에 규정돼 있다.

그린피스와 559명의 원전지역 주민들은 "원안위가 고리 원전의 특수한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건설허가를 내줬다"며 2016년 9월 소송을 제기했다.

10차례 넘는 변론을 거친 끝에 재판부는 원안위의 건설허가 처분이 두 가지 측면에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우선 원안위 위원 중 두 사람이 위촉일로부터 3년 이내에 한수원 내부 위원회에서 활동하거나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구과제를 위탁 수행한 만큼 위원으로 결격 사유가 있다는 점을 꼽았다.

재판부는 "결격자가 의결에 참가한 이상 위법한 의결에 기초해 이뤄진 처분도 위법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한수원이 원전 건설허가를 신청할 때 첨부서류인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의 기재도 미비했다고 봤다.

2016년 6월 개정 시행된 원자력안전법에서 '사고관리' 개념에 '중대사고'에 대한 관리를 포함하도록 규정했음에도,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에 이에 대한 기재가 누락됐다는 것이다.

원안위 측은 하위 법령인 시행규칙이나 고시 등에는 중대사고 개념이 포함되도록 개정되지 않았다고 항변했으나, 재판부는 "상위 법령이 개정된 이후 체계에서는 그 의미가 바뀔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원전 부지의 위치 선정이 부적합했다거나, 지진 및 지질분야 조사가 적정하게 진행되지 않았다는 그린피스와 주민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앞서 인정한 두 가지 위법 사항만으로는 원전 건설 허가 처분까지 취소할 수는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우선 신고리 5·6호기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강화된 안전성 개선 조치를 모두 이행하는 등 원자력안전법상 '중대사고'에 대비한 설계를 충분히 갖췄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따라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심사에 다시 '중대사고' 개념을 반영하더라도 건설허가 여부에 영향을 미친 가능성은 없다고 봤다.

아울러 재판부는 비록 원안위원 두 명이 결격으로 판단되긴 하지만, 영향이 크지 않은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심사 외에는 실체적으로 심사 및 의결에 잘못된 점이 없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격으로 판단된 두 명의 원안위원의 찬성 의견을 제외하더라도 정족수를 충족하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재판부는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의 흠결은 건설허가를 좌우할 성격이 아니고, 원고들의 다양한 주장 중 이런 위법사항 외에는 모두 인정되지 않았다"며 "설령 원안위가 다시 적법한 위원회를 구성해 심의·의결하더라도 같은 결론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내렸다.

반대로 재판부는 처분을 취소할 경우에는 다시 허가 절차를 진행하는 등 공사가 지연돼 적정 전력설비예비율을 갖추지 못할 수 있고, 1천602개에 이르는 관련 사업체들 중 상당수가 도산해 산업과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 처분의 취소로 예상되는 약 4년의 건설중단 기간에 약 1조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며 "여기에 사회적 비용까지 더하면, 처분 취소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