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渡佛 60년·30주기 맞아
인사아트센터 대규모 회고전
'군상' '구성' 등 70여 점 소개
거래 활기 띠는 고암 작품
100호 '문자추상' 1억원 선
경매 최고가는 2억7천만원
한국 미술의 세계화를 선도했던 고암(顧庵) 이응노 화백(1904~1989년·사진)의 예술적 열정을 대변하는 말이다.
1958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줄곧 유럽에서 활동한 고암은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1977년 백건우·윤정희 납북 미수 사건에 연루되면서 ‘금기 작가’ 신세가 됐다. 1980년대 중반을 넘긴 뒤에야 국내 화단의 부름을 다시 받은 그는 1989년 1월 호암미술관에서 대대적인 전시회를 열지만 전시 개막 열흘 만에 세상을 떴다. 동양화의 필묵이 갖는 현대적 감각을 발견한 고암이 올해로 프랑스로 건너간 지 60년, 별세한 지 만 30년이 된다.
고암 서거 3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전 ‘원초적 조형본능’이 16일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렸다. 가나문화재단이 기획한 전시로 전통적인 묵죽화를 비롯해 구상회화, 전위적인 문자추상, 군상 시리즈 등 회화 70여 점이 걸렸다. 1989년 1월10일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바로 전날까지 70여 년의 화업과 그만의 독특한 미학세계를 탐색해보는 자리다. 군상, 문자추상 등 70점 출품
고암의 작품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정신으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시대와 교감했기 때문에 치열함도 묻어난다. 실제 고암은 국제무대에 데뷔한 이후 시대상황과 민족의식을 창작세계의 원천으로 담아내려고 끊임없이 애썼다. 젊은 시절 곧고 힘찬 선의 대나무를 잘 그려 ‘청죽(靑竹)’으로 불린 그는 1970년대의 문자추상에 이어 말년인 1980년대 몰두한 대상이 바로 군상(群像)이다. 동베를린 사건으로 고난이 연속적으로 이어졌지만 감옥생활은 군상그림을 형상화하는 계기가 됐다. 간략한 선 형태의 군중, 사람을 그려 보통 사람들의 생활과 소망을 풀어낸 게 흥미롭다. 작가는 생전에 “모두 서로 손잡고 같은 율동으로 공생공존을 말하는 그림”이라고 자평했다.
수묵화와 서예를 바탕으로 앵포르멜(informel·비정형)을 구현한 문자추상도 고암의 독자적 예술세계를 잘 보여준다. 한글과 한자의 필획이 갖는 추상성과 조형성을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그는 콜라주, 수묵, 유화, 타피스트리 등 다양한 형태의 문자추상을 내놨다. 특히 폐자재와 종이, 천 등의 재료를 사용한 콜라주 작업은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콜라주 기법에 폐자재를 활용하고 그 위에 수묵 담채로 마티에르(재료, 재질)를 표현한 작업이어서 더욱 눈길이 간다.
경매 2억7000만원 신기록
한국화로 시작해 서예적 필치를 추상화로 승화시킨 고암은 생전에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다. 서울 인사동, 청담동 등 화랑가에 유통되는 작품만도 판화를 포함해 5000여 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술시장의 침체가 이어지면서 고암 작품 가격 역시 전반적으로 주춤하고 있다. 작고 이후 지금까지 화랑가와 경매시장에서 특별한 가격변동 없이 100호 크기의 ‘문자추상’과 ‘군상’이 8000만~1억원 선에 거래된다. 2017년 11월 서울옥션 홍콩세일에서는 그의 ‘군상’이 시작가 2배 수준인 약 2억7000만원(190만홍콩달러)에 낙찰돼 작가 최고가 기록을 썼다.
최근 고암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고조되면서 거래가 점차 살아나고 있다. 2017년 경매에 올려진 고암의 작품은 모두 72점. 이 가운데 62점이 팔려 낙찰률 82.6%를 기록했다. 지난해 경매에선 출품작 119점 중 100점이 팔려 낙찰률이 84%로 뛰었다. 지난해 경매낙찰총액은 11억6000만원으로 점당 평균낙찰가는 1160만원 선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