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 한 번이라도 가봤으면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을텐데요”.

[국방부는 요즘] 군의 '4차 산업혁명' 서두르는 국방부
국방혁신 계획안을 짜고 있는 국방부 관료의 푸념이다. 빅데이터, AI(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군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청와대의 주문과 민(民)의 요구가 빗발치면서 요즘 국방부내 관련 부서는 연일 분주하다. 뭔가는 해야겠는데, 좀처럼 감이 안 잡힌다는 게 요즘 국방부 공무원들의 고민이다.

지난 14일 ‘4차 산업혁명 스마트 국방혁신 추진단(이하 추진단)’은 이런 고민에서 출범한 조직이다. 장관 직속으로 단장은 차관이 맡았다. 국방부, 합참, 방위사업청 및 정부출연연구기관 등 국·과장급 30여 명이 참여한다. 국방부는 16일 추진단 발족을 발표하면서 “국방 분야 4차 산업혁명의 컨트롤타워”라고 설명했다. 국방개혁실 관계자는 “현행 기본계획을 구체화하고, 규제 완화 등 추가 과제를 발굴해 관련 부처 및 각군 등 대내외 협의를 통해 실행력을 높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추진단은 오는 18일 실무회의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날 자문단도 발족할 예정이다. 김대희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김석환 한국인터넷진흥원장, 유웅환 SK텔레콤 오픈콜라보 센터장 등 8명으로 1차 자문단이 꾸려졌다.

국방부가 추진단을 발족시킨 건 군이 기술 진화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방부 관계자는 “기업은 20여 년 전에 완성한 ERP(전사적자원관리)를 바탕으로 축적된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 인지를 고민하고 있지만 군에선 데이터 축적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보안 장벽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은 커녕, ‘국방ERP’부터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군내 통신망의 속도도 민간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각 부대에 비치된 사이버 지식방 내 컴퓨터로는 쌍방향 온라인 수업이 불가능할 정도다. 육군 관계자는 “군수 지원 체계도 주먹구구식”이라며 “민간 물류창고엔 진작부터 설치된 RFID(무선인식기술) 시스템조차 군 창고엔 없다”고 지적했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진 않지만 추진단을 통해 3차 산업혁명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군의 기술 수준을 단숨에 4차 산업혁명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게 국방부의 생각이다. 청와대에서도 ‘서두르라’는 신호가 연일 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말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보다 8.2% 증액한 2019년도 국방예산을 제대로 써야한다며 “방위산업을 수출산업으로 육성시키고, 중소·중견기업의 성장을 이끈다면 (군이) 혁신성장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문했다.

안팎의 요구에 떠밀려 국방부가 ‘4차 산업혁명 조급증’에 걸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 전문가들은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들 속성상 말과 구호로만 그치다 말 것이라고 우려한다. IT업계 관계자는 “대통령이 원하는 건 군이 최첨단 무기개발을 위한 기초 R&D(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이를 통한 민간으로의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일텐데 정작 국방부는 뒤쳐진 군조직 운영을 효율화하는데에만 초점을 맞춘 것 같다”며 “차제에 국방부 장관 등 의사결정권자가 실제 4차 산업혁명의 현장을 가보는 게 최선”이라고 지적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