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8시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현대·기아자동차 해외 권역본부장 및 생산·판매 법인장 50여 명이 긴장한 표정으로 모였다. 이들은 곧바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사진)에게 올해 시장 상황 및 내년 사업계획 등을 보고했다. 정 수석부회장이 현대차와 기아차 해외 법인장 회의를 모두 주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회의는 애초 예정된 두 시간을 훌쩍 넘겨 낮 12시가 다 돼 끝났다. 회의 분위기는 다소 무거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기아차의 올해 판매 실적이 당초 목표(755만 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수익성마저 크게 나빠졌기 때문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법인장들을 다그치기보다는 오히려 다독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관계자는 “정 수석부회장이 해외 법인장들에게 위기의식을 재차 강조하기보다는 최악의 대내외 여건에도 불구하고 버틴 것에 대해 격려를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내년 화두는 ‘수익성’

정 수석부회장은 이날 열린 회의에서 내년 화두로 ‘수익성 확보’를 꺼내들었다. 무리한 판매 계획을 세우고 물량을 밀어내기보다는 내실 있는 생산·판매를 통해 수익 기반을 다져야 한다는 취지다. 해외 시장에서 △판매 실적 및 수익성 회복 △조직 혁신 및 민첩성 제고 △미래 사업 실행력 강화 등에 대한 기본 방향도 제시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미국과 중국 등 핵심 시장 중심으로 판매 및 수익성을 확대해 내년을 ‘V자 회복’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 변화 대응 및 전략 실행력 강화를 위해 조직 기능을 효율화하고, 의사결정 체계를 지속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뜻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도전’과 ‘기본’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해외 권역본부 중심으로 각 부문과 협업을 강화해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과 최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해외 권역본부 리더들은 직원들의 자발적 도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터’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모든 변화와 혁신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며 “‘누가 더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느냐’는 기본적 질문에 답하는 기업만 생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美·中 시장 회복 ‘승부수’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먼저 ‘명예 회복’에 나서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 승부를 보지 못하면, 글로벌 시장 전체에서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현대·기아차의 올해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은 중국과 미국 시장 부진이 겹치면서 판매 목표에 못 미치는 740만 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기아차는 우선 미국 시장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업을 대폭 늘린다는 전략이다. 내년 초 현대차 팰리세이드와 기아차 텔룰라이드를 출시해 미국 대형 SUV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다.

중국에선 현지 최대 인터넷서비스업체인 바이두 등과 협업해 첨단 기술을 적용한 신차들을 앞세우기로 했다. 현대차는 ix25와 싼타페 쏘나타, 기아차는 K3 KX3 등 중국 전략 차종들도 대거 출시할 예정이다. 중국 정부의 환경규제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아반떼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코나 전기차(EV) 등 친환경차 판매도 본격화한다.

인도 등 신흥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낸다. 기아차는 내년 하반기 연 30만 대 규모의 인도공장 가동에 들어간다. 동남아시아에선 반조립제품(CKD) 생산 및 판매량을 늘리기로 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