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로 여행한 일본 – ② 교토] 뱃놀이와 인력거의 낭만…교토에선 누구나 귀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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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든 사공이 끄는 아라시야마 야카타부네
명소 오가는 전용 인력거꾼이 사진까지 ‘찰칵’
가을 낭만 서린 난젠지와 에이칸도의 붉은 단풍
명소 오가는 전용 인력거꾼이 사진까지 ‘찰칵’
가을 낭만 서린 난젠지와 에이칸도의 붉은 단풍
가을의 낭만과 함께 느긋하게 즐기는 뱃놀이, 깔끔하고 정갈한 두부 요리, 사람이 직접 끄는 인력거, 밤에 환한 불을 밝히는 고찰까지. 일본 교토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소걸음을 걸으며 여유롭게 다녀도 좋고, 정신없이 명승지를 찾아 떠나도 상관없다. 방문객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교차하는 길은 붐비기도, 어지럽기도 하다. 하지만 교토는 무심하다. 열광하는 대중 앞에 선 슈퍼스타처럼 그저 쿨하다. 가을의 막바지, 단풍으로 물든 교토는 관광객의 환호성을 받으며 다가오는 겨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라시야마 – 여유로운 뱃놀이로 떠나는 낭만 여행 해마다 가을이면 ‘단풍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관광객이 교토에 몰린다. 아라시야마 현지 가이드는 가을 성수기에는 가만히 서 있어도 인파에 몸이 떠내려갈 지경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치 크리스마스 이브의 명동을 생각하면 비슷할까.
교토의 관광명소 중 하나인 아라시야마는 오사카에서 가츠라 역을 경유해 1시간 정도 열차를 타고 가야 한다. 아침 일찍 도착했는데 걱정과 달리 한적했다. 아라시야마는 헤이안 시대에 개발된 귀족의 별장지로 봄 벚꽃과 가을 단풍이 특히 유명하다. 옛날부터 귀족들이 지내던 곳이라 지금도 야라시야마에 산다고 하면 ‘꽤나 잘 사는 사람’으로 취급한단다. 교토의 매력 중 하나인 조용한 정취를 즐기고 싶다면 ‘야카타부네’가 제격이다. 야카타부네란 ‘지붕이 있는 놀잇배’를 말한다. 조금은 고풍스러운 디자인으로 교토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배를 타는 곳은 한큐 아라시야마역에서 걸어서 약 15분 정도 거리에 있다. 아라시야마의 명물인 도게쓰쿄(渡月橋)를 건너기 전 왼편에 나루터가 있으니 찾기 쉽다. 교토 아라시야마 중심을 지나는 가츠라 강을 따라 아라시야마의 자연을 즐기는 야카타부네는 일왕과 귀족들도 즐겼다는 뱃놀이다. 배에 타면 가츠라 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내려와 탑승장 반대편에 내려준다. 커다란 배를 움직이는 사공은 한 명뿐. 얼마 전 한국에 여행 가서 친구랑 소주를 실컷 마셨다가 배탈 때문에 고생했다는 사공은 긴 대나무로 강바닥을 이리저리 밀며 배를 움직인다. 바위에 부딪힐 것 같으면 재빨리 손을 뻗어 배를 밀어내 충돌을 막는다. 능숙한 항해 덕분에 단풍에 물든 아라시야마의 산을 바라보며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배를 타고 있는데 이상하게 오리들이 주위를 계속 따라다녔다. 귀여운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정말 자연 속을 떠다니는 것이 실감났다. 코스 중간쯤에 다다르자 붉은 등과 천을 매단 배 한 척이 다가왔다. 사공은 ‘수상 매점’이라고 알려준다. 다가온 배는 과자나 커피는 물론이고, 오뎅과 따뜻한 청주도 판다. 저마다 커피와 청주를 마시며 뱃놀이를 즐긴다. 오리는 계속 배를 따라다닌다. 먹을 것도 없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할 때쯤, 사공이 작게 자른 식빵을 꺼내 뿌렸다. 그럼 그렇지. 먹이를 사이에 둔 오리들이 서로 날갯짓을 하며 쟁탈전을 벌인다. 강가의 사람들은 뱃놀이 하는 일행을 보며 사진을 찍는다. 갑자기 유명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도 든다.
인력거 – 잠깐 동안 즐기는 귀족 체험 사시사철 아름다운 아라시야마를 편하게 즐기고 싶다면 인력거 체험도 추천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동이 편안하고, 명소에서는 사진도 찍어주니 여러모로 유용하다. 30분짜리부터 2시간까지 선택의 폭도 넓다. 30분 코스를 선택하면 ‘달이 건너는 다리’라는 뜻의 도게츠교를 출발해 인연의 신을 모신다는 노미야신사와 대나무 숲으로 유명한 치쿠린, 단풍 명소인 조작코지를 거쳐 도게츠교로 돌아온다. 붐비는 인파에 휩쓸릴 필요가 없고 느긋하게 앉아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 빠르게 달려가는 인력거 주위로 멋진 풍경이 휙휙 지나간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력거꾼이 거친 숨을 내뿜는다. 탑승자에게는 추울까 봐 이불을 2개나 덮어줬지만 본인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신호등이나 인파에 길이 막힐 때 숨을 돌리는 인부의 모습을 볼 때면 함께 크게 숨을 쉬어 본다. 치쿠린에 들어가자 하늘을 향해 죽죽 뻗어 있는 대나무들이 보였다. 수많은 대나무가 병풍처럼 주변을 가린 길에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이 걸어 다닌다. 푸른 대나무와 원색의 기모노가 어우러져 더 강렬한 분위기를 풍긴다. 한쪽에서는 결혼식을 치르는 신혼부부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축하의 의미로 인력거 위에서 손을 흔들자 신부가 방긋 웃어 보인다. 인력거꾼은 치쿠린 중간에서 멈추더니 무릎을 꿇고 상향 파노라마를 찍어준다. 인력거를 덮을 듯이 빽빽한 대나무 숲이 배경이 된 멋진 사진이 나왔다. 건강한 훈남이 사진도 잘 찍어주니 기분이 좋아진다. 가만히 앉아 여행하고 있자니 마치 귀족이 된 기분이다. 사람이 많아 혼잡하거나 짐이 무겁거나, 체력이 떨어져 걷기도 힘들 때 인력거를 이용하면 비용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일본어가 가능하다면 중간에 인력거꾼의 설명도 들으며 여행할 수 있다.
난젠지 – 절경 때문에 죽은 도둑
교토의 수많은 사찰 중에서도 선종 사찰의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 난젠지다. 난젠지가 일본 제일의 사찰로 불리게 된 것은 일본 황실에서 세운 첫 번째 선종 사찰이기 때문이다. 특히 난젠지는 한국 불교와도 인연이 깊다. 1232년 몽골군의 고려 침략 때 경판 전부가 소실된 고려 초조대장경 521종 1823권이 난젠지에 보존돼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장경연구소가 초조대장경의 디지털 작업을 할 때 난젠지에서 많은 지원과 편의를 제공했다고 한다. 난젠지의 산몬(三門)은 2층 누각 형식으로 높이가 22m에 달하며 교토의 3대문의 하나로 꼽힌다. 현재의 산몬은 오사카 여름 전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1628년 재건된 것이다.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올라가 볼 수 있다. 한 명이 겨우 통과할 듯한 가파른 계단을 거쳐 2층 누각에 오르면 주변의 멋진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몬에서 보는 풍경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유명 가부키 극인 ‘산몬 고산노리키’의 대도 이시카와 고에몬은 부정한 돈을 빼앗아 서민에게 나눠주는 의적으로 등장한다. 그는 산몬 위에 올랐다가 “절경이로다! 절경이로다!”하고 외치다 추격자에게 잡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산채로 기름 솥에 삶는 형벌에 처해졌다고 한다. 산몬을 지나 20세기 초에 재건된 법당 옆으로 걸어가면 수로각이 나온다. 교토 북서쪽의 비와호의 물을 교토로 끌어들이기 위해 메이지 시대인 1885년부터 5년 동안 공사해 완성했는데 그 중 일부가 난젠지 경내를 통과하는 것이다. 우아한 아치를 그리는 수로각은 이탈리아 로마의 수도교를 본떠 만들었다. 지금이야 일본 사찰과 어우러진 붉은 벽돌의 다리로 유명하지만 건설 당시에는 이국적인 수도교가 난젠지 경관을 해친다며 반대하는 여론도 거셌다. 수로각에서 가까운 곳에 호조정원이 있다. 선(禪) 문화를 대표하는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의 백미로 손꼽히는 곳이다. 가레산스이 양식은 자연 경관을 축소해 상징적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하얀 모래에 무늬를 넣어 물결을 표현하고 돌을 놓아 산이나 섬을 표현한다. 호조정원에는 여러 정원이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도라노코와타시’다. 에도시대 최고 조경 전문가로 명성을 떨친 고보리 엔슈가 만든 정원으로 호랑이와 새끼 호랑이가 물을 건너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극단적인 단순함을 추구한 작은 정원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추상화된 대자연을 만난다.
에이칸도 라이트업 – 두 눈마저 붉게 물든다 난젠지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에이칸도에 닿는다. ‘단풍의 에이칸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찰로 정식 명칭은 젠린지이며 853년 창건됐다. 이곳에 보존된 본존 아미타여래 입상은 왼쪽으로 고개가 90도 돌아가 있다. 여기에는 유래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1082년 당시 주지였던 에이칸 스님은 토다이지에서 아미타여래상을 받아 안치했다. 하루는 염불을 외며 아미타여래의 주위를 돌고 있는데 갑자기 아미타여래가 단에서 내려와 에이칸 스님과 걷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스님이 걸음을 멈추자 아미타여래가 돌아보며 “에이칸, 너무 늦구나”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아미타여래의 얼굴은 옆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법당에 안치됐다고 한다. 일본에서 에이칸도는 교토의 아름다운 가을을 즐기기 좋은 명소로 통한다. 경내에 3000그루에 가까운 단풍나무가 활활 타오르는 듯한 경치가 압권. 특히 11월부터 시작되는 야간 라이트업 시기가 되면 많은 인파가 몰린다. 라이트업은 오후 5시 반부터 9시까지 이어지며 경내를 화려하게 밝힌다. 입장 1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득해 발 디딜 틈이 없다.
입장 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경내의 연못이다. 연못에는 작은 사당으로 연결되는 다리가 놓여 있는데 단풍을 밝히는 야간 조명과 어우러진 풍경은 눈까지 붉게 물들일 지경이다. 연못 옆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있어서 잠시 쉴 수도 있다. 낙엽이 융단처럼 깔린 길을 오가다 보면 마치 레드카펫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하지만 교토에서 가장 유명한 단풍 명소인 만큼 방문객이 워낙 많아 붐비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
여행팁
야카타부네 유람선의 소요시간은 30분 정도다. 상류까지 뱃사공이 장대 하나로 안내하며 2명 기준 3500엔, 1명 늘어날 때마다 1100엔이 추가된다. 출항 시간은 따로 없고 예약은 받지 않으니 탑승장으로 바로 가면 된다. 인력거의 경우 30분 코스가 1명에 7000엔, 2명은 9000엔이다. 주요 탑승장은 JR 사가아라시야마 역, 도게츠교 건너기 전 등에 있지만 아라시야마 곳곳에 인력거꾼이 많아서 찾기 어렵지 않다. 난젠지 경내 입장은 무료. 산몬, 호조정원 등은 500엔이고, 에이칸도의 평소 입장료는 600엔이며 단풍 시즌에는 1000엔이다. 교토를 포함한 간사이 지역을 두루 다니고 싶은 여행객이라면 비용 절감을 위해 교통패스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 한큐 투어리스트 패스는 오사카, 교토, 고베까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2일권의 경우 연속으로 사용할 필요가 없어서 더욱 편하게 쓸 수 있다. 하루는 교토, 하루는 고베로 가는 식으로 동선을 짜면 된다. 내년 3월 31일까지는 1일권 700엔(정상가 800엔), 2일권 1200엔(정상가 1400엔)에 판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아라시야마 – 여유로운 뱃놀이로 떠나는 낭만 여행 해마다 가을이면 ‘단풍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관광객이 교토에 몰린다. 아라시야마 현지 가이드는 가을 성수기에는 가만히 서 있어도 인파에 몸이 떠내려갈 지경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치 크리스마스 이브의 명동을 생각하면 비슷할까.
교토의 관광명소 중 하나인 아라시야마는 오사카에서 가츠라 역을 경유해 1시간 정도 열차를 타고 가야 한다. 아침 일찍 도착했는데 걱정과 달리 한적했다. 아라시야마는 헤이안 시대에 개발된 귀족의 별장지로 봄 벚꽃과 가을 단풍이 특히 유명하다. 옛날부터 귀족들이 지내던 곳이라 지금도 야라시야마에 산다고 하면 ‘꽤나 잘 사는 사람’으로 취급한단다. 교토의 매력 중 하나인 조용한 정취를 즐기고 싶다면 ‘야카타부네’가 제격이다. 야카타부네란 ‘지붕이 있는 놀잇배’를 말한다. 조금은 고풍스러운 디자인으로 교토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배를 타는 곳은 한큐 아라시야마역에서 걸어서 약 15분 정도 거리에 있다. 아라시야마의 명물인 도게쓰쿄(渡月橋)를 건너기 전 왼편에 나루터가 있으니 찾기 쉽다. 교토 아라시야마 중심을 지나는 가츠라 강을 따라 아라시야마의 자연을 즐기는 야카타부네는 일왕과 귀족들도 즐겼다는 뱃놀이다. 배에 타면 가츠라 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내려와 탑승장 반대편에 내려준다. 커다란 배를 움직이는 사공은 한 명뿐. 얼마 전 한국에 여행 가서 친구랑 소주를 실컷 마셨다가 배탈 때문에 고생했다는 사공은 긴 대나무로 강바닥을 이리저리 밀며 배를 움직인다. 바위에 부딪힐 것 같으면 재빨리 손을 뻗어 배를 밀어내 충돌을 막는다. 능숙한 항해 덕분에 단풍에 물든 아라시야마의 산을 바라보며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배를 타고 있는데 이상하게 오리들이 주위를 계속 따라다녔다. 귀여운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정말 자연 속을 떠다니는 것이 실감났다. 코스 중간쯤에 다다르자 붉은 등과 천을 매단 배 한 척이 다가왔다. 사공은 ‘수상 매점’이라고 알려준다. 다가온 배는 과자나 커피는 물론이고, 오뎅과 따뜻한 청주도 판다. 저마다 커피와 청주를 마시며 뱃놀이를 즐긴다. 오리는 계속 배를 따라다닌다. 먹을 것도 없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할 때쯤, 사공이 작게 자른 식빵을 꺼내 뿌렸다. 그럼 그렇지. 먹이를 사이에 둔 오리들이 서로 날갯짓을 하며 쟁탈전을 벌인다. 강가의 사람들은 뱃놀이 하는 일행을 보며 사진을 찍는다. 갑자기 유명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도 든다.
인력거 – 잠깐 동안 즐기는 귀족 체험 사시사철 아름다운 아라시야마를 편하게 즐기고 싶다면 인력거 체험도 추천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동이 편안하고, 명소에서는 사진도 찍어주니 여러모로 유용하다. 30분짜리부터 2시간까지 선택의 폭도 넓다. 30분 코스를 선택하면 ‘달이 건너는 다리’라는 뜻의 도게츠교를 출발해 인연의 신을 모신다는 노미야신사와 대나무 숲으로 유명한 치쿠린, 단풍 명소인 조작코지를 거쳐 도게츠교로 돌아온다. 붐비는 인파에 휩쓸릴 필요가 없고 느긋하게 앉아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 빠르게 달려가는 인력거 주위로 멋진 풍경이 휙휙 지나간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력거꾼이 거친 숨을 내뿜는다. 탑승자에게는 추울까 봐 이불을 2개나 덮어줬지만 본인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신호등이나 인파에 길이 막힐 때 숨을 돌리는 인부의 모습을 볼 때면 함께 크게 숨을 쉬어 본다. 치쿠린에 들어가자 하늘을 향해 죽죽 뻗어 있는 대나무들이 보였다. 수많은 대나무가 병풍처럼 주변을 가린 길에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이 걸어 다닌다. 푸른 대나무와 원색의 기모노가 어우러져 더 강렬한 분위기를 풍긴다. 한쪽에서는 결혼식을 치르는 신혼부부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축하의 의미로 인력거 위에서 손을 흔들자 신부가 방긋 웃어 보인다. 인력거꾼은 치쿠린 중간에서 멈추더니 무릎을 꿇고 상향 파노라마를 찍어준다. 인력거를 덮을 듯이 빽빽한 대나무 숲이 배경이 된 멋진 사진이 나왔다. 건강한 훈남이 사진도 잘 찍어주니 기분이 좋아진다. 가만히 앉아 여행하고 있자니 마치 귀족이 된 기분이다. 사람이 많아 혼잡하거나 짐이 무겁거나, 체력이 떨어져 걷기도 힘들 때 인력거를 이용하면 비용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일본어가 가능하다면 중간에 인력거꾼의 설명도 들으며 여행할 수 있다.
난젠지 – 절경 때문에 죽은 도둑
교토의 수많은 사찰 중에서도 선종 사찰의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 난젠지다. 난젠지가 일본 제일의 사찰로 불리게 된 것은 일본 황실에서 세운 첫 번째 선종 사찰이기 때문이다. 특히 난젠지는 한국 불교와도 인연이 깊다. 1232년 몽골군의 고려 침략 때 경판 전부가 소실된 고려 초조대장경 521종 1823권이 난젠지에 보존돼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장경연구소가 초조대장경의 디지털 작업을 할 때 난젠지에서 많은 지원과 편의를 제공했다고 한다. 난젠지의 산몬(三門)은 2층 누각 형식으로 높이가 22m에 달하며 교토의 3대문의 하나로 꼽힌다. 현재의 산몬은 오사카 여름 전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1628년 재건된 것이다.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올라가 볼 수 있다. 한 명이 겨우 통과할 듯한 가파른 계단을 거쳐 2층 누각에 오르면 주변의 멋진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몬에서 보는 풍경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유명 가부키 극인 ‘산몬 고산노리키’의 대도 이시카와 고에몬은 부정한 돈을 빼앗아 서민에게 나눠주는 의적으로 등장한다. 그는 산몬 위에 올랐다가 “절경이로다! 절경이로다!”하고 외치다 추격자에게 잡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산채로 기름 솥에 삶는 형벌에 처해졌다고 한다. 산몬을 지나 20세기 초에 재건된 법당 옆으로 걸어가면 수로각이 나온다. 교토 북서쪽의 비와호의 물을 교토로 끌어들이기 위해 메이지 시대인 1885년부터 5년 동안 공사해 완성했는데 그 중 일부가 난젠지 경내를 통과하는 것이다. 우아한 아치를 그리는 수로각은 이탈리아 로마의 수도교를 본떠 만들었다. 지금이야 일본 사찰과 어우러진 붉은 벽돌의 다리로 유명하지만 건설 당시에는 이국적인 수도교가 난젠지 경관을 해친다며 반대하는 여론도 거셌다. 수로각에서 가까운 곳에 호조정원이 있다. 선(禪) 문화를 대표하는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의 백미로 손꼽히는 곳이다. 가레산스이 양식은 자연 경관을 축소해 상징적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하얀 모래에 무늬를 넣어 물결을 표현하고 돌을 놓아 산이나 섬을 표현한다. 호조정원에는 여러 정원이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도라노코와타시’다. 에도시대 최고 조경 전문가로 명성을 떨친 고보리 엔슈가 만든 정원으로 호랑이와 새끼 호랑이가 물을 건너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극단적인 단순함을 추구한 작은 정원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추상화된 대자연을 만난다.
에이칸도 라이트업 – 두 눈마저 붉게 물든다 난젠지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에이칸도에 닿는다. ‘단풍의 에이칸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찰로 정식 명칭은 젠린지이며 853년 창건됐다. 이곳에 보존된 본존 아미타여래 입상은 왼쪽으로 고개가 90도 돌아가 있다. 여기에는 유래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1082년 당시 주지였던 에이칸 스님은 토다이지에서 아미타여래상을 받아 안치했다. 하루는 염불을 외며 아미타여래의 주위를 돌고 있는데 갑자기 아미타여래가 단에서 내려와 에이칸 스님과 걷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스님이 걸음을 멈추자 아미타여래가 돌아보며 “에이칸, 너무 늦구나”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아미타여래의 얼굴은 옆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법당에 안치됐다고 한다. 일본에서 에이칸도는 교토의 아름다운 가을을 즐기기 좋은 명소로 통한다. 경내에 3000그루에 가까운 단풍나무가 활활 타오르는 듯한 경치가 압권. 특히 11월부터 시작되는 야간 라이트업 시기가 되면 많은 인파가 몰린다. 라이트업은 오후 5시 반부터 9시까지 이어지며 경내를 화려하게 밝힌다. 입장 1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득해 발 디딜 틈이 없다.
입장 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경내의 연못이다. 연못에는 작은 사당으로 연결되는 다리가 놓여 있는데 단풍을 밝히는 야간 조명과 어우러진 풍경은 눈까지 붉게 물들일 지경이다. 연못 옆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있어서 잠시 쉴 수도 있다. 낙엽이 융단처럼 깔린 길을 오가다 보면 마치 레드카펫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하지만 교토에서 가장 유명한 단풍 명소인 만큼 방문객이 워낙 많아 붐비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
여행팁
야카타부네 유람선의 소요시간은 30분 정도다. 상류까지 뱃사공이 장대 하나로 안내하며 2명 기준 3500엔, 1명 늘어날 때마다 1100엔이 추가된다. 출항 시간은 따로 없고 예약은 받지 않으니 탑승장으로 바로 가면 된다. 인력거의 경우 30분 코스가 1명에 7000엔, 2명은 9000엔이다. 주요 탑승장은 JR 사가아라시야마 역, 도게츠교 건너기 전 등에 있지만 아라시야마 곳곳에 인력거꾼이 많아서 찾기 어렵지 않다. 난젠지 경내 입장은 무료. 산몬, 호조정원 등은 500엔이고, 에이칸도의 평소 입장료는 600엔이며 단풍 시즌에는 1000엔이다. 교토를 포함한 간사이 지역을 두루 다니고 싶은 여행객이라면 비용 절감을 위해 교통패스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 한큐 투어리스트 패스는 오사카, 교토, 고베까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2일권의 경우 연속으로 사용할 필요가 없어서 더욱 편하게 쓸 수 있다. 하루는 교토, 하루는 고베로 가는 식으로 동선을 짜면 된다. 내년 3월 31일까지는 1일권 700엔(정상가 800엔), 2일권 1200엔(정상가 1400엔)에 판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