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소윤(38·사진)은 지난달 30일 제주 서귀포시에서 열린 '난주'(은행나무)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소설에 대해 “단순히 종교소설, 신앙소설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올해 제주4·3문학상 수상작인 장편소설 '난주'는 조선 후기 정약현의 딸이자 다산 정약용의 조카, 명망 있는 명문가 장녀였던 실존인물 ‘정난주 마리아’가 신유박해로 남편 황사영이 처형당하는 등 집안이 몰락한 뒤 제주도에서 관노비로 살아야 했던 비극적 인생 여정을 그려낸 소설이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천주교도였던 난주가 실제로 살았던 서귀포시 대정읍 ‘정난주 마리아묘’에서 시작됐다. '난주'의 원제는 ‘잊혀진 꽃들’이다. 정약용이나 정약전, 천주교도였던 황사영과 달리 그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남편이 참형 당한 뒤 제주로 유배돼 별감 김석구의 집에서 유모를 했고 37년동안 존경받으며 지내다 세상을 떴다는게 알려진 전부다. 김 작가는 “엄청난 신분 추락을 겪은 정난주라는 인물이 37년이라는 세월을 어떻게 보냈길래 주변사람들의 사랑과 격려를 받고 살았을까 궁금했다”며 “주인공 못지 않게 잊혀진 주변인들의 삶에도 하나하나 특별한 가치와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 거란 생각에서 소설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소설은 짧은 역사적 사실 하나로 뼈대를 세웠고 여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입혔다. 소설 말미에 난주와 아들 경헌이 헤어진지 37년만에 해후하는 장면은 오롯이 작가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갖는 강점은 사실감이다. 작가는 많은 역사 책과 논문, 방언사전 등을 찾아 역사와 종교는 물론 제주 풍습이나 방언까지 사실적으로 고증하고 복원했다. 또 난주의 아버지인 정약현과 황사영이 등장했던 김훈의 '흑산'을 비롯해 홍명희 '임꺽정', 황석영 '장길산' 등 역사소설을 찾아 읽으면서 작품과 문장을 구상했다. 흔치 않은 여성작가의 역사소설임에도 글엔 특유의 묵직함과 단단함이 묻어난다.
작가는 가장 애착을 느낀 장면으로 ‘난주가 갓난아기였던 아들 경헌을 추자도에 버리고 갈 때’를 꼽았다. 이 장면에서 그는 엄마로서 어느 때보다 애절하게 한탄한다. 12살 아들과 9살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한 작가는 “난주가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은 지금 저와 닮았다. 그게 가장 마음에 박혔던 이유”라고 말했다. 난주는 아이를 꼭 안은채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종국에는 흘러간다. 그늘도 음지도 해가 들면 다시 꽃을 피운다”고 되뇌인다. 그는 “경헌이 명예나 부를 생각하지 말고 평범하게 살아남길 바라는 어미의 절절한 마음을 담고 싶었다”며 “부모님이 어린시절 제게 말해준 말이자 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소설속 난주가 아들 경헌을 그리워하며 보말, 연 등을 양자로 키우고 구휼소를 세우는 등 주변을 보듬는 배경엔 천주교라는 신앙이 있다. 저자는 “난주는 나약한 여자이자 애절했던 엄마, 외로운 아내였지만 신앙인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할 인물로 그릴 수 있는 건 그가 가진 신앙적 고귀함이 아닌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의 작은 재능과 사랑을 주변인들과 나누려는 ‘인간다움’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주=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