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
생태계의 보고 신두리 해안사구
신두리 해안사구는 우리나라 최고의 사구지대로 신두리 해수욕장에 사막처럼 넓은 모래벌판이 펼쳐져 있다. 규모는 해변을 따라 길이 약 3.4㎞로 사구의 원형이 잘 보존된 북쪽지역 일부가 2001년 11월30일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됐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빙하기 이후 약 1만5000년 전부터 서서히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한 바람으로 모래가 해안가로 운반되면서 오랜 세월을 거쳐 모래언덕으로 만들어졌다. 신두리 해안은 모래로 구성돼 있어 간조 때가 되면 넓은 모래 개펄과 해빈이 노출된다. 모래가 바람에 의해 개펄과 해변에서 육지로 이동돼 사구가 형성되기에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다. 마치 일본 돗토리에 있는 사구가 연상된다.
해안 사구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생태계가 조성돼 전국 최대의 해당화 군락지가 형성돼 있다. 통보리사초, 모래지치, 갯완두, 갯매꽃을 비롯해 갯방풍과 같이 희귀식물들도 지천으로 피어 있다. 표범장지뱀, 종다리, 맹꽁이, 쇠똥구리, 사구의 웅덩이에 산란을 하는 아무르산개구리, 금개구리 등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나무데크를 따라 모래언덕 입구에 오르면 신두리해안사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 데크에서 사구를 천천히 감상하는 것이 포인트다. 신두사구 해안도로를 걸으며, 모래 속에 도장처럼 찍힌 고라니 발자국을 찾아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신두사구에는 오래전에 운석이 떨어진 모래밭이 있다. 별똥재는 말 그대로 별똥의 재를 말하는 것. 운석이 떨어진 땅에는 좋은 기운이 머문다는 옛 이야기가 있는 만큼 신두사구 작은별똥재를 지나며 소원을 빌어보는 것도 좋겠다.
억새군락 펼쳐진 영화 ‘마더’ 촬영지
넓게 펼쳐진 사구와 바람에 춤추는 억새 군락은 이 계절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 억새꽃이 피는 가을에는 작은 이삭이 가을 햇살을 비추며 반짝반짝 빛이 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김혜자 씨가 춤을 추며 등장했던 첫 장면이 이곳 억새골이다. 억새골을 지나 닿는 곳은 해당화동산. 해당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마음이 담겨 있는 꽃이다. 삭막한 모래 언덕에서 피어나는 보랏빛 분홍꽃은 간절한 마음을 뜻하는 것처럼 보인다.
신두리 해안을 걷다 보면, 다른 곳보다 작은 모래 경단이 모여 있는 곳이 보인다. 염랑게와 달랑게는 모래를 잔뜩 삼키고 자기가 좋아하는 먹이만 빼먹은 뒤 모래를 뱉고 모래를 둥글게 말아 놓는 특성이 있다. 염랑게와 달랑게가 뱉어놓은 모래경단이 마르고 해풍으로 인해 육지로 운반돼 사구가 형성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순비기언덕의 순비기나무는 해변 근처의 모래땅이나 자갈 틈에서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중부 이남 지역이나 제주도에서 자란다. 제주도 방언 중에 ‘숨비기소리’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육지로 올라와서 세차게 내는 숨소리를 말한다. 예로부터 두통치료제로 순비기나무의 열매를 먹기 시작했고, 순비기나무의 이름은 그렇게 유래됐다고 한다. 잎과 가지의 향이 좋아 천연 허브로도 많이 사용된다. 추운 곳에서도 잘 자라나는 순비기나무는 모래가 바람에 의해 유실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사구형성에 중요한 식물이다.
핑크뮬리, 팜파스그라스 활짝! 청산수목원
태안에서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또 한 곳인 청산수목원에는 팜파스그라스가 활짝 피었다. 베이지색의 화려한 팜파스그라스는 서양 억새로도 불리며 키가 크고 꽃이 탐스러운 코르타에리아속의 벼과 식물이다. 파란 하늘 아래 큰 키에 풍성하고 부드러운 꽃이 활짝 핀 팜파스가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이 상당히 이국적이다. 동물 농장 앞에는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핑크뮬리가 만개해 연신 카메라를 누르게 만드는 자연 포토존이 되고 있다.
팜파스(억새)와 핑크뮬리가 만발한 청산수목원은 10만㎡ 규모로 크게 수목원과 수생식물원으로 이뤄져 있다. 황금삼나무, 홍가시나무, 부처꽃, 앵초, 창포, 부들 같은 익숙한 수목과 야생화 600여 종을 볼 수 있다. 밀레, 고흐, 모네 등 예술가들의 작품 속 배경과 인물을 만날 수 있는 테마정원과 계절 따라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는 산책로와 황금메타세쿼이아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셀프웨딩 촬영 명소로도 인기다.
수목원은 밀레의 정원, 삼족오 미로공원, 고갱의 정원, 만다라정원, 황금삼나무의 길로 구분돼 있다. 천천히 감상하며 여유 있게 산책하는 것이 이곳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밀레의 정원은 ‘이삭줍기’와 ‘만종’을 비롯한 밀레의 주요 작품들 속 장면을 활용해 입체적으로 표현돼 있다.
청산수목원은 여러 테마 정원과 더불어 자라풀, 부레옥잠, 개구리밥, 물수세미, 생이가래 등 수생식물이 자생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예연원에는 수생식물을 포함해 국내외에서 엄선해 수집한 연과 수련 200여 종이 매년 여름이면 화려하게 피어오른다. 청산수목원에서는 25일까지 팜파스억새축제가 열린다.
석양이 아름다운 해변길 5코스 노을길
태안의 가을을 느끼는 또 하나의 방법은 해변길을 걷는 것이다. 해변길 5코스 노을길은 백사장항에서 꽃지해변으로 이어지는 길로, 길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석양’이 아름다운 곳이다. 바다를 한쪽에 끼고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참 좋은 길이다. 특히 길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꽃지해변의 석양은 태안에서 꼭 봐야 할 장관이다.
길의 하이라이트는 두여해변에서 밧개해변 쪽으로 넘어가는 언덕에 있는 두여전망대다. 썰물 무렵 두여전망대에 오르면 너른 해변에 드러나는 물결 모양의 바위 습곡을 볼 수 있다. 낙조 시간이 겹치면 붉게 물든 너른 백사장과 습곡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해안 전체를 가득 채운 검은 바위의 습곡은 마치 꿈틀거리는 용의 등지느러미처럼 보인다. ‘여’는 밀물 때에는 바닷물 속에 잠기고 썰물 때는 드러나는 바위를 말한다. ‘두여’는 그런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꽃지해변은 안면도에서 가장 큰 해수욕장으로 넓은 백사장과 완만한 수심, 맑고 깨끗한 바닷물, 알맞은 수온과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뤄져 있다. 오래전부터 주변에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어 꽃지라는 지명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물이 빠지면 갯바위가 드러나 조개·고둥·게·말미잘 등을 잡을 수 있다.
꽃지해변은 할미바위, 할아비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낙조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방포와 꽃지를 연결하는 꽃다리를 따라 아름다운 해넘이 경관을 관찰할 수 있다.
태안=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여행 메모
태안은 생각보다 맛집이 많다. 꽃지해수욕장 인근 방포회타운은 회가 싱싱하고 맛있다. 4인 한상차림이 16만원. 백사장항 털보선장횟집의 꽃게탕도 별미다. 태안 서부재래시장이나 안면도 수산시장에서도 제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간장게장과 우럭젓국, 어리굴젓으로 이름난 바다꽃게장집, 게국지·간자미회무침·물텀벙이탕으로 유명한 명화수산, 박속밀국낙지탕 원조로 알려진 원풍식당 등 미식의 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