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이 안전자산인 금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신흥시장 불안으로 위험자산 회피 성향이 강해진 가운데 달러화 가치가 하락할 것으로 보고 달러화 자산 일부를 금으로 바꾸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아울러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화를 앞세운 각종 제재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CNBC는 “금은 미국 달러화 가치 하락에 대비한 헤지 수단으로 쓰인다”고 분석했다.
2일 세계금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각국 중앙은행들은 58억2000만달러(약 6조6000억원)를 들여 금 148t을 매입했다. 금 매입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121.8t)보다 22% 늘어난 것으로 2015년 4분기 후 3년여 만에 최대다.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매수세가 두드러졌다. 러시아가 92.2t으로 가장 많았고 터키(18.5t) 인도(13.7t) 카자흐스탄(13.4t) 등이 뒤를 이었다. 프란세스코 모스콘 런던 부르넬대 경영경제학과 교수는 “기준금리 인상에 취약한 신흥국이 달러 영향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금 보유량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은행들이 금 보유량을 늘린 가장 큰 이유는 미국 금리 인상에 이은 신흥시장 불안으로 위험회피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미국발 세계 경제 호황이 정점에 이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데다 최근 미국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 등의 시장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위험자산 선호가 최근 변곡점을 맞이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서 금값이 상대적으로 하락한 영향도 있다. 10월8일 금 현물 가격은 1트로이온스(31.1g)당 1186.95달러로 지난해 1월9일(1178.5달러) 이후 21개월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하지만 최근 금값은 수요가 많아지면서 한 달 사이에만 4% 가까이 뛰었다.

같은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가 아니라 금 수요가 높아지는 이유는 외환 보유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려는 움직임과도 관련이 있다. 달러 패권을 이용한 미국의 경제 제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러시아는 4~5월 보유하고 있던 미 국채 80%를 매각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달러를 약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재가 가해졌기 때문에 채권을 팔았다”고 했다. 금은 경제 제재를 받을 때 달러를 대체하는 지급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터키는 5년 전 이란이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을 때 달러 대신 금으로 이란산 원유를 수입했다.

김형규/설지연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