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선수냐, 연예인이냐'
늘 따라붙는 악플에 마음 상처
준우승만 6번에 슬럼프도 겹쳐
"커트 탈락땐 한시간이나 울었죠"
지난주 최종 라운드서 역전 우승
"아시안게임 金 딸 때보다 떨려
꾸준히 톱10 드는 선수될 것"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4년차 박결(22·삼일제약)의 기사에 단골손님처럼 따라다니던 악성 댓글이다. 선수의 상품성이 중요한 요소인 프로골프 세계에서 외모 가꾸는 것을 지적받는 것만으로도 황당할 법한데, 심지어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던 박결은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그가 신인 때 소위 ‘쌩얼’로 경기에 나섰고, 그 흔한 ‘인스타그램’ 계정 하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옷차림은 후원사가 제공하는 것만 입는다. 대부분 시간은 연습과 줄넘기 등 운동하며 보낸다.
하지만 이마저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아 애써 둘러대지 않았다. 여섯 번의 준우승. 그러나 잡힐 듯하면서 잡히지 않는 우승. 그는 언론 인터뷰까지 자제하며 목표인 우승을 향해 칼을 갈았다.
지난주 KLPGA투어 첫 우승(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달 30일 만난 박결은 “노력하고 항상 꿈꿔왔지만 내게도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우승하니 내 주변에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는 걸 깨달았다”며 “축하도 많이 받고 지금 이 순간이 꿈만 같다”고 했다.
◆포기하지 않으니 우승 찾아와
2014 인천아시안게임 여자골프 개인전 금메달리스트인 박결은 그해 열린 KLPGA투어 시드전까지 수석으로 통과하며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데뷔 동기들인 지한솔(23)과 박지영(22)이 트로피를 들어올릴 때도 그는 우승과 연을 맺지 못했다. 응원이 비난으로 변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상황에서 지난 8월에는 2개 대회 연속 커트 탈락까지 당했다.
박결은 “대회장에선 울지 않는 편인데 그날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눈물이 터졌고 한 시간 가까이 울었다”며 “부담감 때문인지 공도 안 맞고 모든 것이 안 됐다.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슬럼프처럼 우승도 예고 없이 찾아왔다. 데뷔 후 약 4년 만이자 106번째 도전 만에 맺은 결실이었다. 3라운드까지 최혜용(28)에게 8타 차 뒤져 있던 박결은 최종 라운드에서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그는 자신의 우승 가능성을 18번홀 그린에 올라가서야 깨달았다고 했다. 박결은 “5위 정도를 생각하고 18번홀 그린에 가서 리더보드를 봤는데 윗자리에 있었다”며 “버디를 잡기 위해 지나가게 퍼트했는데 공이 홀을 너무 많이 지나쳤다. 꼭 넣어야 하는 파 퍼트를 앞두곤 너무 떨렸다. 그 순간만큼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딸 때보다 훨씬 더 떨렸다”고 돌아봤다.
◆남몰래 이어온 선행
어렵게 올라온 정상의 자리다. 그는 지금의 기쁨을 주변과 함께 나눌 생각이다. 우승하기 전부터 꾸준히 기부를 실천해 온 그는 대한골프협회와 모교인 동일전자정보고등학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에 상금 일부를 기부할 예정이다.
박결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한 건 실력보다 운이 컸다. 아시안게임과 시드전 성적까지 겹쳐 과분한 관심을 받았던 게 사실인 만큼 받은 사랑을 후배들과 나누고 싶다”며 “앞으로도 꾸준한 선수가 되는 게 목표다. 꾸준히 기부하고 꾸준히 톱10에 드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