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일 그랜드힐튼서울
가상화폐를 범죄로 보는 정부
내달 ICO 정부 입장 발표 앞두고
국감 참석한 최종구 금융위원장
'가상화폐 ICO 불허 유지' 기조 확인
업계 "투기 아닌 산업으로 접근을"
"가상화폐-블록체인 분리 불가능"
블록체인 기능 위해선 '보상' 필요
가상화폐와 분리땐 산업 고사
◆부정적 기류 강한 정부
지난 11~12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는 가상화폐 및 가상화폐공개(ICO)에 대한 금융당국의 부정적 견해를 다시 한번 확인한 자리가 됐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질의응답 과정에서 “ICO의 불확실성이 여전한데 피해는 심각하다”고 말했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산업을 동일시할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ICO 금지를 풀지 않겠다는 의중인 것이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사견임을 전제로 가상화폐 관련 규제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부정적 뉘앙스만은 아니다. “명시적 규제를 도입해 산업 환경의 불확실성을 걷어내달라”고 블록체인업계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 규제 도입은 ICO 처벌의 법적 근거 마련 성격도 있어 양면성을 띤다.
업계에는 다음달 ICO 관련 입장을 정리해 내놓겠다는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의 발언과 맞물려 정부 정책이 결국 ‘ICO 불허’로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ICO 금지로 결론 난다면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분야 20~30대 젊은 창업자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나라로 전락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연초 논란을 빚은 뒤 “투기가 아니라 산업으로 접근해 달라”며 여러 경로로 당국에 의견을 전달해온 업계로서는 힘 빠지는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거래소 폐쇄 얘기까지 나왔던 올초 시각에서 변한 게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거래소 관계자도 “블록체인을 키운다면서 가상화폐는 외면하는 정부의 이분법적 사고가 안타깝다”고 했다.
지난 6월 ‘블록체인 기술 발전전략’ 발표 후 최근 현장 기업들과 직접 만나며 블록체인 규제개선 연구반을 운영하고 있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진흥책과는 상반되는 행보다. 정부 부처 간에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블록체인 육성, 가상화폐 억제’ 기조를 재확인했을 뿐이라는 냉소 섞인 반응이 나왔다.
◆알맹이 빠진 블록체인 진흥책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의 분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이다. 탈(脫)중앙화를 추구하는 블록체인에서 가상화폐는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인센티브(보상) 역할을 하고 있다. 블록체인 생태계의 구동 엔진이자 윤활유라 할 수 있다. 정부의 분리 대응 방침은 이런 양자의 상관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암호학 분야 전문가인 김형중 고려대 교수는 최근 청와대 관계자와 만나 가상화폐산업에 대한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하지만 중소벤처기업부의 ‘가상화폐거래소의 벤처업종 제외’ 법제화를 막지는 못했다. 김 교수는 “과기정통부가 블록체인 진흥책을 펴면서도 ‘가상화폐와는 분리’ 전제가 깔린 점은 문제”라고 했다.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의 분리는 개별 업체의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선 가능하지만 ‘퍼블릭 블록체인’의 근본정신과 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방형 인터넷(퍼블릭 블록체인)을 지향해야 하는 블록체인이 폐쇄적 인트라넷(프라이빗 블록체인)에 그친다는 얘기다. 김상환 딜로이트컨설팅 상무는 “한 회사 내에서만 구동하는 블록체인은 큰 의미가 없다. 참여자가 많아질수록 블록체인 본연의 기능에 충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불가능한 분리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정부가 피 한 방울 흘리지 말고 살을 베어가라는 ‘베니스의 상인’과 비슷하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이민화 KAIST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의 분리가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면 블록체인이 죽는다”고 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