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압박·中 내부사정 겹쳐
직접 방문 대신 측근 보내
김정은 집권후 최고위급 방북
4일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대변인은 리 상무위원장이 오는 8일 시 주석의 특별대표 자격으로 중국 공산당과 정부 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이번 방북은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정부의 초청으로 성사됐다. 조선중앙통신도 비슷한 시간에 동일한 내용을 보도해 양측이 사전에 입장을 조율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서열 3위인 리 상무위원장은 2012년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 중국의 방북 인사로는 최고위급이다. 2015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 경축 열병식에는 당시 권력서열 5위인 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이 참석했다.
리 상무위원장의 방북은 중국의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4차 방북을 준비하던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시 주석의 9·9절 방북이 유력시됐다. 그나마 서열 3위의 방북을 강행함으로써 북한의 체면을 살려준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중국 전문가는 “중국이 현 상황에서 최상의 성의 표시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북한도 이에 대해 양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의 방북 취소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배후설을 잇따라 언급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윗을 통해 “중국이 자금, 에너지 등 상당한 원조를 북한에 제공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비핵화 협상 난항의 책임을 중국에 돌렸다. 이와 관련, 중국 정부는 시 주석이 최근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 정상회의 등 국내 일정이 산적한 점을 리 상무위원장의 대리 참석 배경으로 설명했다.
중국의 이번 결정이 미·북 비핵화 협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당장 예단하기 어렵다. 전문가 사이에선 중국이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연출해 미국 측에 한반도 비핵화의 적극적 개입자가 아니라 능동적 중재자임을 보여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를 갖고 있다”며 중재자로서의 중국의 역할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5일 방북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과 마찬가지로 리 상무위원장이 김정은을 설득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나서도록 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리 상무위원장이 9·9절 행사에 참석하기로 함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열병식에도 모습을 드러낼지 주목된다. 북한이 무력을 공개적으로 과시하는 자리에 중국 지도부가 자리를 같이한다는 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신상진 광운대 국제학부 교수는 “북한으로선 리 상무위원장이 가장 높은 서열의 귀빈일 것이기 때문에 상석에 앉혀서 북·중 관계 개선을 과시할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이것을 미국에 대한 도전으로 보기는 어렵고, 현재로선 모든 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상황이라 북·중이 이번 9·9절 행사를 통해 대외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단언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동휘/이미아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