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8일 내놓은 ‘중장기 투자·고용계획’의 핵심은 과감한 투자를 통해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미래 정보기술(IT)산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데 있다. 반도체와 같은 핵심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사업과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신사업은 해외보다 국내에 우선 투자하기로 한 점도 과거와는 달라진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등 후발업체로 핵심 기술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면서 국내 일자리를 늘리는 데도 기여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설명이다.

새로운 미래 성장 사업으로 꼽은 인공지능(AI), 5세대(5G) 통신, 바이오, 전장부품 등 네 가지 분야엔 삼성그룹의 자본과 인력이 집중될 전망이다.
투자 1순위는 반도체

삼성그룹은 이날 올해부터 2020년까지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중장기 경영 전략을 발표했다. 연구개발(R&D)과 시설투자, 인수합병(M&A)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투자금이 162조원으로 전체의 9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평균 투자금액으로 따지면 54조원이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삼성전자 연평균 투자금(43조6000억원)보다 23.7% 많다.

삼성전자는 전체 투자금의 55%인 90조원을 반도체 사업에 쏟아붓는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연평균 30조원 규모다. 세계 최대 규모의 메모리반도체 공장인 경기 평택 반도체 1라인을 동시에 세 개 깔 수 있는 돈이다. 최근 3년(2015~2017년)간 연평균 반도체 설비 투자금(18조4000억원)과 비교해도 63% 많다. 삼성전자 고위관계자는 “글로벌 보호 무역주의와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항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총투자금액을 발표하면서 세부 투자 대상과 지역은 밝히지 않았다.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세부 계획까지 공개하면 반도체 시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서는 올초 착공한 평택 반도체 공장 2라인에만 총 30조원이 투자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 화성 공장의 첨단 미세공정인 극자외선 노광(EUV) 라인도 주요 투자 대상이다.

4대 신사업으로 미래 먹거리 확보

삼성은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신사업으로 AI, 5G 통신, 바이오, 전장부품 등 네 가지 분야를 제시했다. 앞으로 3년간 이들 4개 신사업에 투자할 금액은 25조원이다. 이들 4개 산업이 대부분 초기 태동 단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투자금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이 앞으로 집중적으로 키울 신사업을 선정해 외부에 공개한 것은 2010년 5월 태양전지, 자동차전지,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등 5대 신수종 사업을 발표한 뒤 약 8년 만이다. 투자금은 당시(10년간 23조3000억원)보다 많아졌다. 당시 신수종 사업 중 바이오만 이번 4대 신사업에 포함됐다. 삼성 경영진이 그만큼 핵심 사업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AI, 전장부품, 5G 통신도 앞으로 IT업계의 판도를 좌우할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다.

반도체와 신사업은 국내 투자 집중

삼성전자는 이날 이례적으로 국내외 투자 규모를 공개했다. 국내 투자가 130조원으로 전체의 72%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주력 사업과 네 가지 신사업 분야는 국내에 주로 투자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R&D 분야도 가급적 국내에 투자할 계획이다. 과거 삼성이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 중국 시안(메모리반도체 공장)과 쑤저우(LCD 공장), 베트남 박닌성(휴대폰) 등지에 잇따라 생산 기지를 세운 점을 감안하면 투자전략이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등 후발업체들과의 기술 격차가 좁혀지면서 핵심 기술과 인재 유출에 대한 우려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내 일자리 창출 효과도 감안했다는 후문이다. 삼성전자는 국내 투자를 통해 향후 3년간 국내에서 직접 고용할 인원을 당초 계획(2만~2만5000명)보다 최대 2만 명 늘리기로 했다. 대규모 투자에 따른 고용유발 효과는 7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