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무시할 수 없는 일본의 '한국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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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도쿄 특파원
“스마트폰에선 삼성이 ‘세계 1등’이지요….”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나이 지긋한 택시기사가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인이라는 대답에 돌아온 첫마디는 ‘세계 1위 삼성’에 대한 얘기였다. 거품경제 붕괴로 택시기사를 하기 전까지 이토추상사에서 근무했다는 그는 “1980년대만 해도 비디오데크 부품 공급을 위해 한국 삼성전자 공장으로 출장을 여러 번 갔었는데…. 이제는 일본 업체들을 모두 합쳐도 삼성전자에 역부족”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택시기사에게 ‘세카이 이치(세계 1위)’라는 표현은 삼성과 한국을 수식하는 관용구와도 같았다.
한국産에 대한 엇갈린 시선
하지만 일본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찬사만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코네 등에서 대당 2000만~3000만엔(약 2억~3억원) 하는 관광버스 5대를 운영하는 한국인 여행사 사장은 택시기사와는 정반대 소식을 전했다. “일본 운전기사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가격이 좀 싸다고 한국산 버스를 운전하게 하면 곧바로 불만이 터져 나온다”는 것이었다. 직원 사기와 업무 효율이 걸린 문제여서 어쩔 수 없이 비싼 가격에 ‘이스즈’ 같은 일본 브랜드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직 일본차와 한국차 간 품질 격차가 상당하다는 비평은 덤으로 따라왔다.
일본인의 한국 기업에 대한 인식은 ‘이중적’이다. 일본 경제의 양대 축인 자동차와 전자산업에서 일본을 위협하는 강력한 경쟁 국가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동시에 “아직은 한국이 일본보다 한 수 아래”라는 시각도 만만찮다. 솔직히 일상에선 후자를 훨씬 더 많이 접한다.
도쿄 주요 지역에 있는 대형 가전양판점인 야마다덴키에선 협찬 계약을 맺고 전시된 LG전자 TV 앞에서 판매원들이 “품질은 국산(일본제)이 더 좋고, 한국 제품도 다 일본 부품을 쓴다”는 근거도 없는 ‘애국심 마케팅’을 태연하게 한다. 삼성전자조차 일본 TV 광고에선 ‘삼성’ 브랜드를 숨긴 채 ‘갤럭시S9+’ 같은 제품명만 내보낼 뿐이다. 2009년 일본 승용차 시장에서 철수한 현대자동차는 2017회계연도(2017년 4월~2018년 3월)에 버스를 중심으로 75대의 차량을 파는 데 그쳤다. 일본시장이 ‘한국 기업의 무덤’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파이 나누기' 골몰하는 한국
물론 이 같은 한국 제품에 대한 일본인들의 배타적 태도가 ‘세상 변한 것 모르는’ 측은한 모습일 수 있다. 한국 제품의 품질이 더 좋고, 가격 경쟁력도 있다면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일본일 터이니 걱정할 일도 아니다. 문제는 일본인의 ‘메이드 인 코리아’에 대한 ‘하대(下待)’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단정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3월 KOTRA가 발간한 ‘4차 산업혁명 국제경쟁력 비교’에서 한국은 12개 신산업 분야 모두에서 일본에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 글로벌 기업들의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개발, 선진국들의 인공지능(AI) 기술 경쟁 소식이 전해질 때 한국에서는 노사 분쟁, 탈(脫)원전, 최저임금 인상 같은 비용 증가와 관련한 뉴스만 쏟아진다. 미래를 준비하기보다는 과거에 일군 ‘파이’를 뜯어먹기 바쁜 모습이다.
얼마 전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일본 주요 기업 289곳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를 보면 일본 기업들은 현재는 물론 10년 뒤에도 한국이 일본의 기술력을 따라잡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예상’이 빗나가길 기대하지만, 미래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하는 지금 한국의 모습이 계속된다면 ‘암울한 전망’이 ‘현실’이 될 것이란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kimdw@hankyung.com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나이 지긋한 택시기사가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인이라는 대답에 돌아온 첫마디는 ‘세계 1위 삼성’에 대한 얘기였다. 거품경제 붕괴로 택시기사를 하기 전까지 이토추상사에서 근무했다는 그는 “1980년대만 해도 비디오데크 부품 공급을 위해 한국 삼성전자 공장으로 출장을 여러 번 갔었는데…. 이제는 일본 업체들을 모두 합쳐도 삼성전자에 역부족”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택시기사에게 ‘세카이 이치(세계 1위)’라는 표현은 삼성과 한국을 수식하는 관용구와도 같았다.
한국産에 대한 엇갈린 시선
하지만 일본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찬사만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코네 등에서 대당 2000만~3000만엔(약 2억~3억원) 하는 관광버스 5대를 운영하는 한국인 여행사 사장은 택시기사와는 정반대 소식을 전했다. “일본 운전기사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가격이 좀 싸다고 한국산 버스를 운전하게 하면 곧바로 불만이 터져 나온다”는 것이었다. 직원 사기와 업무 효율이 걸린 문제여서 어쩔 수 없이 비싼 가격에 ‘이스즈’ 같은 일본 브랜드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직 일본차와 한국차 간 품질 격차가 상당하다는 비평은 덤으로 따라왔다.
일본인의 한국 기업에 대한 인식은 ‘이중적’이다. 일본 경제의 양대 축인 자동차와 전자산업에서 일본을 위협하는 강력한 경쟁 국가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동시에 “아직은 한국이 일본보다 한 수 아래”라는 시각도 만만찮다. 솔직히 일상에선 후자를 훨씬 더 많이 접한다.
도쿄 주요 지역에 있는 대형 가전양판점인 야마다덴키에선 협찬 계약을 맺고 전시된 LG전자 TV 앞에서 판매원들이 “품질은 국산(일본제)이 더 좋고, 한국 제품도 다 일본 부품을 쓴다”는 근거도 없는 ‘애국심 마케팅’을 태연하게 한다. 삼성전자조차 일본 TV 광고에선 ‘삼성’ 브랜드를 숨긴 채 ‘갤럭시S9+’ 같은 제품명만 내보낼 뿐이다. 2009년 일본 승용차 시장에서 철수한 현대자동차는 2017회계연도(2017년 4월~2018년 3월)에 버스를 중심으로 75대의 차량을 파는 데 그쳤다. 일본시장이 ‘한국 기업의 무덤’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파이 나누기' 골몰하는 한국
물론 이 같은 한국 제품에 대한 일본인들의 배타적 태도가 ‘세상 변한 것 모르는’ 측은한 모습일 수 있다. 한국 제품의 품질이 더 좋고, 가격 경쟁력도 있다면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일본일 터이니 걱정할 일도 아니다. 문제는 일본인의 ‘메이드 인 코리아’에 대한 ‘하대(下待)’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단정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3월 KOTRA가 발간한 ‘4차 산업혁명 국제경쟁력 비교’에서 한국은 12개 신산업 분야 모두에서 일본에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 글로벌 기업들의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개발, 선진국들의 인공지능(AI) 기술 경쟁 소식이 전해질 때 한국에서는 노사 분쟁, 탈(脫)원전, 최저임금 인상 같은 비용 증가와 관련한 뉴스만 쏟아진다. 미래를 준비하기보다는 과거에 일군 ‘파이’를 뜯어먹기 바쁜 모습이다.
얼마 전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일본 주요 기업 289곳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를 보면 일본 기업들은 현재는 물론 10년 뒤에도 한국이 일본의 기술력을 따라잡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예상’이 빗나가길 기대하지만, 미래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하는 지금 한국의 모습이 계속된다면 ‘암울한 전망’이 ‘현실’이 될 것이란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