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영화 속 풍광이 안내하는 낯선 세상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는 내내 파리가 그리웠다. 영화 속 주인공에게는 빠져들지 못하고 영화 속 그곳에 있던 나를 떠올렸다. 자전거로 센강을 따라 달리고, 생마르탱 운하의 한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고, 밤의 루브르를 서성대고, 몽마르트르에 올라 노을을 바라보던 그 애틋한 시간을…. 흥미진진한 스토리도, 아름다운 배우도 파리 그 자체보다 매혹적이지 않다. 헤밍웨이는 “파리는 마음속의 축제”라고 했지만 내게 파리는 ‘마음속의 고향’이다. 파리는 무작정 나의 도시 같은 기분이다. 영화 속 ‘광란의 1920년대’ 파리에서 피카소와 헤밍웨이를 제치고 예술가들의 뮤즈 아드리아나에게 선택받은 주인공 미국 남자가 나 자신이라도 되듯, 한 여인에 대한 추억으로 가슴이 설렌다.

《영화가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는 스물일곱 편의 영화 속 풍광을 체험한 여행기다. 저자는 영화를 보며 여행을 떠나 스스로 영화의 주인공이 돼 인생을 탐험한다. 뉴욕이란 신세계를 찾아갔지만 이방인에 불과했던 여행자의 슬픔을 그린 ‘천국보다 낯선’, 바이크로 캐나다를 횡단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 사는 법을 가르쳐준 ‘원 위크’, 여행하기 전 내가 알던 세상이 얼마나 작았는지 알게 해준 ‘그는 9시 기차에 탔을까’, 열두 살 소녀를 노인과 강제 결혼시키고 정의가 실현됐다고 선포한 탈레반의 모습을 담은 ‘천상의 소녀’ 등을 소개한다. 저자에게 여행이란 어떤 장소의 창조적 영혼에 다가서는 시간이며 영화는 단 두어 시간 만에 전혀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 이를 실현시켜줄 수 있는 최고의 미디어다. (박준 지음, 어바웃어북, 352쪽, 1만6800원)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