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와 일본 도시바가 “한국전력공사는 더 이상 무어사이드 원전 프로젝트의 우선협상대상자가 아니다”고 통보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 원전업계는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작년 7월 ‘탈(脫)원전’을 공식 선언한 정부가 “수출을 확대해 국내 원전 생태계의 붕괴를 막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무어사이드 원전 협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수익 조건에 대한 견해차가 커 최종 타결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도시바 “다른 업체와도 협상”

3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도시바는 지난 25일 “한국 측과의 협상이 길어지고 있고 뉴젠의 운영비 지출도 부담된다”며 한전의 우선협상자 자격을 해지했다.

뉴젠은 도시바가 100% 지분을 보유한 원전 개발 회사로, 영국 북서부 무어사이드에 원전 3기 건설을 추진해왔다. 총사업비는 21조원 규모다. 도시바는 한전 외에 중국 러시아 등의 다른 원전 사업자와도 협상하기로 했다.

한국과 영국 간 협상이 길어진 것은 수익성에 대한 견해차가 컸기 때문이다. 무어사이드 원전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처럼 단순히 원전을 건설해 넘기는 방식이 아니다. 한전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원전을 지은 뒤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영국 정부에 팔아 투자비를 회수하는 사업이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영국 측에 수익성 담보와 위험 경감 방안을 요구했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듣지 못했다.

영국 정부와 도시바는 한전 등과 협상하면서 종전과 다른 사업 방식(RAB모델)을 제안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정부가 원전 사업자에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장하고 손실 위험도 자신들이 분담하는 방식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무어사이드 원전의 타당성 연구를 수개월 내 완료하면 정부의 예비 타당성 조사를 본격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영국 정부가 원자력으로 생산하는 전력에 비싼 가격을 보장해주지 못하면서 협상이 난항을 겪었다”며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원전업계 “수출 주력한다더니”

영국 원전 수주가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지만 사업 성공이 불확실해지면서 원전업계는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이번 우선협상대상자 자격 상실이 한국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탈원전 정책을 계속하면 원전 수출도 어려워질 것”이란 원전업계의 예상이 들어맞고 있어서다. 한국은 차세대 원전 모델인 ‘APR 플러스’를 개발해놓고 한 번도 수출하지 못했다.

수주 가능성을 높게 봤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협상도 난항을 겪고 있다. 사우디는 1단계 입찰에 참여했던 한국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5개국 모두를 예비사업자(쇼트리스트)로 선정했다. 업계에선 내년은 돼야 사우디가 본계약자를 선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탈원전 정책에 따라 고사 위기에 놓인 업계에선 수출을 유일한 대안으로 봤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있다”며 “정부가 원전 생태계를 살릴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재길/성수영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