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이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1층 대기실은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로 빼곡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복도를 지나는 것도 어려울 정도였다. 밤낮 구분이 없었다.

1980·1990년대 소화아동병원은 항상 그랬다. 고(故) 이하영 원장이 1946년 10월 서울 태평로에 문을 연 소아과가 시작이었다. 작을 소(小), 꽃 화(花)자를 써 소화의원이라고 이름 붙였다. 소화의원은 1966년 국내 첫 어린이 전문병원인 소화병원으로 커졌다. 1981년 지금 있는 서울 용산구로 옮긴 소화아동병원은 2000년대 중반까지도 국내에서 어린이 외래환자를 가장 많이 받는 병원이었다.

70년 넘게 아이들 건강을 책임지던 ‘작은 꽃(小花)’이 꺾였다. 소화아동병원이 건물을 매각한다. 아동병원 크기는 3분의 1로 줄어든다. 저출산의 여파다. 환자가 크게 줄어든 데다 수가가 낮은 어린이 진료만으로는 만성 적자를 떨치기에 역부족이었다.
◆몸집 줄이는 국내 첫 어린이 전문병원

김규언 소화아동병원 병원장은 “지난 3일 용산구보건소로부터 건물 매각을 위한 최종 허가를 받았다”며 “소화아동병원은 당분간 30병상 규모로 축소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근당 계열사인 종근당건강이 건물을 매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소화아동병원은 2~3개 층만 임차해 운영할 계획이다. 김 병원장은 “국내 어린이병원의 역사 같은 소화병원이 생존하지 못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했다.

소화아동병원은 국내 어린이병원의 효시다. 1990년대 무리한 확장으로 위기도 겪었다. 하지만 직원들은 ‘아이들 진료를 책임지는 곳’이라는 자부심으로 버텼다. 이장한 종근당 회장의 출자도 도움이 됐다.

2005년 한 해 이 병원을 찾은 어린이 환자는 16만3821명이나 됐다. 저출산 여파는 빠르고 강하게 병원을 덮쳤다. 지금은 허가받은 92병상 중 30병상만 운영하고 있다. 이조차 병상 가동률이 70~80% 수준이다. 이 병원의 상징이자 자랑이던 신생아실은 문을 닫았다. 응급실도 운영하지 않는다. 김 병원장은 “이전에는 하루 외래환자가 1000명에 이를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한 달에 1000명을 보기도 어렵다”며 “아이 수가 줄면서 환자가 크게 줄었다”고 했다.

◆저출산에 소아과·산부인과 추풍낙엽

신생아 수를 보면 소화아동병원이 어려워진 이유를 알 수 있다. 1965년 104만 명, 1970년 100만 명, 1980년 80만 명이던 신생아 수는 2005년 43만 명, 작년 35만 명 선으로 줄었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곳은 산부인과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아이가 태어나는 병원으로 알려진 서울 중구 제일병원은 지난해부터 직원들 임금 삭감에 들어갔다. 병원 토지 매각 등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여파는 소아청소년과로도 번지고 있다. 박양동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은 “전국에 아동병원이 110개 있는데 출생아 수가 45만 명 정도 돼야 유지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40만 명 미만으로 아이들 숫자가 줄면 병원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분만시설이 없는 병원이 늘고 신생아실이 부족해져 신생아 중환자를 볼 의사가 없어지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어린이병원에는 ‘아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어린이 진료는 어른보다 손이 많이 가고 신경 쓸 것이 많아 진료시간이 오래 걸린다. 인력도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건강보험 수가는 이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국내에서 수익을 내는 어린이병원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서울대 어린이병원조차 매년 100억원 넘는 손실을 본다.

무너진 의료전달체계도 어린이병원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증상이 가벼운 환자는 동네의원, 이보다 심한 환자는 병원, 중증 환자는 대학병원을 찾아야 하지만 이 룰은 지켜지지 않는다. 열이 나는 소아 감기 환자도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한다. 어린이병원의 위기는 심해지고 있다. 소화아동병원도 마찬가지다.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지정돼 밤 시간 아이들을 위해 문을 열었지만 주변 대학병원들과 경쟁해야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국내 최초 아동병원이자 아동병원의 상징인 소화아동병원은 저출산과 왜곡된 의료시스템으로 인해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는 처지가 됐다.

이지현/한민수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