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굴레》 《달과 6펜스》로 이름을 알린 윌리엄 서머싯 몸(1874~1965)의 대표 에세이 《서밍 업》이 국내 최초로 완역 출간됐다. 몸이 64세 되던 해인 1938년 출간된 이 책은 한국에도 1970년대 번역, 소개됐지만 그가 애초에 썼던 77편의 단편을 모두 담고 있지는 않았다.

1890년부터 1938년까지 자신의 삶과 철학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77편의 철학적인 글로 이뤄져 있다. 각 글의 분량은 짧지만 그가 살아오면서 겪고 느낀 인생관과 우주관, 철학관, 가치관, 예술관, 문학관, 여성관, 결혼관, 유신론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정리했다. 자신을 많이 드러내지 않지만 고백적인 문체를 담고 있어 ‘자서전 같지 않은 자서전’ ‘문학적 자서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책은 크게 그의 문장론과 연극론, 소설론, 인생론 등 4장으로 구성돼 있다. 문장론에서 그는 문장을 쓰는 법과 작가로서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한다. 다독(多讀)으로 유명했던 그는 “작가는 스스로 계속 새로워져야만 비옥해질 수 있으며 이를 위해 과거의 위대한 문학작품을 깊이 연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문체를 어떻게 완성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는 당대에 화려한 문장으로 유명했던 월터 페이터나 존 러스킨의 복잡한 문장을 흉내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처럼 쓸 수 없자 결국 자기가 바랐던 문장이 아니라 실천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그는 문장을 잘 쓰는 요령으로 명석함과 단순함, 좋은 소리를 꼽았다. 세 가지 요소를 고루 갖춘 문장은 힘들이지 않고 쓴 자연스러운 문장의 느낌을 준다고 그는 강조한다.

철학을 깊게 탐구했던 그가 인생관을 풀어 쓴 부분도 흥미롭다. 그는 일생에 걸쳐 종교에 대해 깊게 사색하던 인간이었다. 모태신앙이었지만 그는 세상의 악을 구제하지 못하는 신에 대해 회의를 품는다. 유년 시절 말을 더듬던 그에게 면박을 주던 선생님, 말을 더듬지 않게 해달라고 신에게 애절하게 빌었지만 그다음 날이 돼도 여전히 말을 더듬는 그를 놀리던 동급생들, 소를 굶기고 술을 마시며 자신이 설교한 대로 살아가지 않는 목사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는 무신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인간이 가진 ‘선(善)’에 대한 강한 믿음을 드러내 보이며 책을 마무리한다. 그는 “선만이 현실에서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가치”라고 주장한다. 이어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를 불가피한 악으로 둘러싸는 이 무심한 우주에서 선량함은 우리 자신의 독립성에 대한 확인이 되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덧없이 사라지는 사랑이나 아름다움과는 차원이 다른 가치라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그의 독창적인 주장이 항상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비추어 독자의 인생 철학을 되돌아볼 기회를 주는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이종인 옮김, 위즈덤하우스, 404쪽, 1만6000원)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