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던 지난 시간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것 같았다. 참을 수가 없었다.”

박성현(25·KEB하나은행)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강해서가 아니라 여려서라는 해석이 많다.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 기사도 안 본 지 오래”라고 말하는 게 그렇다. 푹 눌러 쓴 모자 그늘 사이로 하얀 치아가 반짝이면 ‘경기가 잘 풀리고 있다’고 짐작할 따름이다. 외국 기자들은 그래서 그를 ‘미스터리 골퍼’라고도 부른다.

“힘든 시간 한꺼번에 보상”

박성현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2일(한국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세 번째 메이저대회인 KPMG위민스PGA챔피언십(총상금 365만달러)을 제패한 직후다. 그는 연장 두 번째 홀에서 2m짜리 버디 퍼트를 홀에 굴려 넣어 우승을 확정한 뒤 캐디 데이비드 존스를 끌어안고 눈물을 쏟았다. 시즌 2승이자 통산 4승. 지난해 7월 US여자오픈 이후 1년여 만에 다시 일궈낸 두 번째 메이저 타이틀이다.

박성현은 이날 미국 일리노이주 킬디어의 켐퍼레이크스GC(파72·6741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일을 3언더파로 끝냈다. 73명의 선수 중 유일한 ‘노(no) 보기’ 성적표. 최종 합계 10언더파를 기록한 박성현은 유소연(28·메디힐), 하타오카 나사(일본)와 함께 연장전을 치렀다. 연장전 첫홀에서 혼자만 버디를 잡지 못한 하타오카가 먼저 짐을 쌌다. 이어진 연장 두 번째 홀(16번홀)에서 버디를 잡아낸 박성현이 파에 그친 유소연을 밀어내고 우승 상금 54만7500달러(약 6억1000만원)를 손에 넣었다. 4라운드에 들어설 때 박성현은 단독 선두 유소연에게 4타 뒤진 3위였다. 박성현은 “올해 다섯 번이나 커트 탈락하는 등 힘들었다”며 “우승으로 한꺼번에 모든 것을 보상받은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이어 “믿어지지 않는 결과”라며 “나 자신에게 ‘자랑스럽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1인치 짧은 퍼터+‘타깃 중심’ 루틴 결실

지난해 LPGA투어에 데뷔한 박성현은 신인상, 올해의 선수상, 상금왕을 휩쓸며 1978년 낸시 로페스(미국) 이후 39년 만에 ‘신인 3관왕’이 됐다. 하지만 올해 그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심한 부침을 겪었다. 네 번째 대회인 KIA클래식에서 2라운드 합계 2오버파를 기록하며 미국 진출 이후 처음으로 커트 탈락했다. 휴젤JTBCLA오픈에서 5오버파를 치며 두 번째 커트 탈락했을 때도 도약을 위한 ‘통과의례’ 정도일 것으로 팬들은 여겼다. 실제 그는 곧바로 출전한 텍사스클래식에서 시즌 첫 승을 따내며 그간의 우려를 기우로 돌리는 듯했다.

그 이후가 문제였다. 한국에서 날아온 열성팬들이 보는 앞에서 세 번 연속(볼빅오픈, US여자오픈, 숍라이트클래식)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박성현은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극약처방’을 했다. 34인치짜리 말렛 퍼터를 33인치로 바꿨다. 퍼터가 짧아지면 퍼팅 셋업과 어드레스, 루틴이 모두 달라진다. 퍼팅 시스템 전체가 달라져 자칫 더 큰 화를 초래할지 모를 커다란 변화다. 박성현은 몸 앞으로 바짝 당겨 잡던 그립을 앞으로 살짝 내밀고 스탠딩 스타일이던 허리를 앞으로 좀 더 숙였다. 캐디 존스는 “연습 퍼팅 때 그린 바닥을 보던 루틴을 홀컵을 보는 루틴, 즉 타깃 중심 루틴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몸 안에 있는 시각적 본능을 일깨우는 루틴이라는 게 존스의 설명이다.

이 선택은 이번 대회에서는 결실을 거뒀다. 짧은 퍼팅 실패가 줄어들면서 라운드당 평균 퍼트 수가 28.5개로 줄었다. 그는 보기 없이 6언더파를 친 1라운드를 끝낸 뒤 “퍼팅이 많이 편해졌다”고 스스로 감행한 도전에 합격점을 줬다.

박성현의 우승으로 한국 선수들은 올 시즌 6승을 합작했다. 메이저 통산 승수도 29승으로 늘었다.

3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일에 나섰던 유소연은 메이저 3승과 세계랭킹 1위 탈환을 다음 기회로 미뤘다. 유소연은 “아쉽지만 때가 아닌 듯하다”며 “또 기회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