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청법 '이의제기권' 조항, 수사배제·인사 불이익 우려로 사문화
문무일 '수평적 소통' 제도화 속도 낼 듯…"부당명령 이의제기 의무화해야"
'항명 사태' 가까스로 넘긴 검찰… '투명한 의사결정' 과제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과정에서 일선 검사와 검사장급 간부가 검찰총장의 지휘권 행사에 반발하면서 불거진 '항명 사태'는 검찰 조직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손질해야 한다는 숙제를 남겼다.

취임 일성으로 검찰 특유의 수직적 의사결정을 수평적 구조로 바꿔 나가겠다고 공언한 문무일 검찰총장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제도개선 작업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문 총장과 대검 수뇌부의 수사지휘에 대한 안미현 검사와 강원랜드 수사단의 문제 제기는 그동안 검찰 조직의 관행에 비춰 과격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상명하복식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불만이 오랜 기간 곪았다가 터져 나온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상부의 지시·명령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서슴없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상명하복과 절대복종을 동력으로 운영되는 조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상관에 대한 검사의 이의제기권은 법률에 보장돼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개정된 검찰청법은 검사동일체 원칙을 삭제하고 '검사는 구체적 사건과 관련된 지휘·감독의 적법성 또는 정당성에 대해 이견이 있을 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의제기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의를 제기하면 사건 재배당 등 방법으로 수사에서 배제될 수 있는 데다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의제기 절차를 구체적으로 다룬 규정도 미비했다.

검사의 이의제기권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 총장이 강원랜드 수사단에 압력을 넣었다고 주장한 안미현 검사의 지난 15일 기자회견이 정당한 이의제기권 행사에 해당하는지 논란이 될 정도로, 검찰 조직 내에도 이의제기는 아직 생소하다.
'항명 사태' 가까스로 넘긴 검찰… '투명한 의사결정' 과제
이 때문에 이의제기권 활성화는 검찰개혁 목소리가 거세질 때마다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지난해 11월엔 검찰개혁위원회가 이의제기권 보장을 위한 지침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대검은 '검사의 이의제기 절차 등에 관한 지침'을 만들어 올해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지침은 사건 처리를 놓고 이견이 발생했을 때 일단 숙의 과정을 거치고, 그래도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일선 검사가 서면으로 이의제기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이의제기를 받은 기관장은 발생 사실과 조치 내용을 상급 검찰청에 보고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검사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구체적 절차를 마련하고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문제 소지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강조해온 문 총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견을 기록으로 남기면 나중에 왜곡된 것으로 드러난 사건이 있을 때 진상규명도 용이해진다"며 "검사들이 돌발행동 대신 좀 더 책임 있는 의견을 주장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폐쇄적 성격이 짙고 인사에 극도로 민감한 검찰 조직 특성상 이 제도가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아직 의문이다.

이 때문에 검사의 이의제기를 의무에 가깝게 활성화하되 불이익은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은 '(상급자로부터 받은) 직무상 명령이 적법한지 의문이 생긴 경우 지체 없이 상급자에게 주장해야 하고, 명령이 지속되는 경우 자신이 책임에서 면제된다'고 연방공무원법에 규정하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검사의 이의제기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남길 구체적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문 총장이 취임 초기부터 추진했던 합리적 의사소통·결정 시스템 개선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