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진화 나선 백악관
북·미회담 前 한·미공조 균열 우려
백악관, 공식 부인했지만 트럼프의 이중플레이 가능성
2003년에도 처음엔 부정…실제 병력 감소로 이어져
한·미 당국은 4일 주한미군 관련 논란을 잠재우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전날 뉴욕타임스(NYT)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국방부에 주한미군 병력 감축 옵션을 준비하라고 명령했다”고 보도한 뒤부터다.
NYT 보도가 전해진 직후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미국을 방문 중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백악관 핵심 관계자와 통화한 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핵심 관계자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고 전해왔다”고 밝혔다. 크리스토퍼 로건 미 국방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대변인도 “국방부의 한국에서의 임무는 그대로이며 병력 태세에도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백악관도 즉각 부인했다. 볼턴 보좌관은 본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NYT 보도는 완전한 난센스”라고 일축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펜타곤에 주한미군 병력감축 옵션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없다”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자칫 한·미 공조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주한미군 감축설의 파장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언급했던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도 말을 바꿨다. 문 특보는 3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저는 (주한미군 주둔을) 찬성하는 사람”이라며 “평화협정(체결) 이후에도 동북아의 전략적 안정과 우리의 국내적 정치적 안정을 위해 주한미군의 지속적 주둔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특보는 지난달 30일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해 논란을 빚었다.
◆과거에도 부인했지만 감축으로 이어져
한·미가 조기 진화에 나섰지만 주한미군을 둘러싼 논란의 불씨는 여전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줄기차게 주한미군 철수를 얘기해온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최근 들어선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까지 가세했다. 그는 남북한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에서 ‘남북이 평화협정을 맺은 뒤에도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우선 동맹국들과 논의하고 북한과도 논의할 문제”라며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을 시사했다. NBC는 지난 1일 트럼프 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 전 주한미군을 철수하려던 것을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만류해 단념시켰다고 보도했다.
과거에도 비슷한 전례가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인 2003년 6월 당시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주한미군을 2006년까지 단계적으로 감축하겠다고 통보했다. 관련 보도가 이어졌지만 한·미 정부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결국 3만5000명이었던 주한미군 수는 2008년 2만8500명 수준으로 줄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날 비밀리에 미국을 방문한 것도 주한미군을 둘러싼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청와대는 미국 요청에 따라 정 실장의 방미를 사전에 공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런 정황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비핵화 대가로 제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선 “한국이 분담금을 늘리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줄이겠다”고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빅터 차 미국 전략문제연구소 한국석좌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에 어필할 수 있는 한편 미국의 부담을 줄이고 미·북 정상회담에서 쓸 ‘값비싼 전표’를 확보하는 ‘일석삼조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