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design), 디지털(digital), 드림(dream)…. 모두 ‘d’자로 시작하는 영어 단어다. ‘d+d=d’라는 공식은 필자가 수년 전 출간한 저서를 통해서 처음 소개했다. ‘디자인과 디지털이 만나면 꿈이 이뤄진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 세 단어는 무엇인가 미래를 향하고 있음을 우연히 발견했다.

디지털이라는 단어가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런데 디지털이 우리의 생활방식을 하나둘 바꿔 나가는 시점에 디자인의 역할이 변하고 있으며, 디자인의 영향력과 디자이너의 역할은 커지고 있다. 아날로그적 환경이 디지털 기술에 의해 변화하면서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더 좋은 상품과 생활환경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이 쏟아지고 있고 그 답을 찾아내는 일이 디자이너의 몫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자 중심의 산업화 시대 디자인의 역할이 제품 기능과 형태를 완성하는 데 있었다고 한다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디지털 전환)’ 시대 디자인의 역할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인간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할 수 있는 비즈니스 아이템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데 있다. 오랜 시간 진화한 산업화 시대에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상품이나 서비스 출현이 쉽지 않았다. 디지털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이런 산업화 시대의 비즈니스 환경을 하나씩 바꿔 나가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4차 산업혁명’이란 말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란 표현이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지는 세계적 변화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수백년간 세 차례에 걸쳐 변화해온 ‘산업화 시대’의 굴레를 벗어나야 새로운 세상이 보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등장한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기술적 혁신을 통한 인간 생활방식의 변화는 ‘산업(industry)’으로부터라기보다 ‘사용자(user)’로부터 시작된다. 기업들은 디지털 환경이 만들어낸 새로운 가능성을 소비자에게서 찾아내려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이런 기업 환경의 변화는 승자의 자리를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어내는 기업에 내주고 있다. 세계 10대 기업 그룹에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디지털 기술이 불가능했던 일들을 가능하게 했고, 순식간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쏟아내고 있다. 예를 들어 수년 내에 이전까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큰 규모의 세계시장을 사물인터넷(IoT) 분야가 만들어 갈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물(things)’은 인간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건을 말하는데,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모든 사물은 ‘디자인돼야’ 하고 생산돼야 한다. 지나간 산업화 시대와 달리 이제는 모든 사물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의 생활방식에 맞춰 새롭게 창조돼야 하고 당연히 ‘디자인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디자인 방식의 가장 커다란 변화는 디자인이 모든 제품 개발의 첫 단계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제품 개발의 마무리 단계로 인식됐던 디자인이 이제는 상품 기획의 첫 단계로 변한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우리의 생활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었고 새로운 상품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제는 미래의 사용자 경험을 경쟁자보다 먼저 상상할 수 있는 기업이 승자의 자리를 차지한다.

필자는 이 시대의 디자인을 과거의 데코레이션(장식) 중심 개념과는 확연히 다른 ‘빅디자인’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빅디자인은 빅데이터 못지않은 중요한 단어가 될 것이다. 지난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디자인 위크’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필자는 “빅디자인은 빅데이터를 사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모든 프로세스를 의미한다”고 했다.

가장 커다란 회사보다 가장 새로운 회사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됐다. 디지털 세상에서 디자인으로 세상 사람들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기업이 그렇지 못한 기업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