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3년 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의 일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진행 중이다. 엘리엇은 최근 현대자동차그룹도 공격하는 등 안정적 경영권 확보에 고심하는 한국 기업의 약점을 묘하게 파고들고 있다. 현 정부 들어 급변한 ‘정책 환경’을 십분 활용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투자 차익의 극대화인지, 경영개입 등 그 이상까지 노리는지 판단이 쉽지 않다.

엘리엇의 ISD 요지는 “두 회사 합병 때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ISD는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국 정부를 상대로 하는 소송으로, 한·미 FTA 발효 후 처음으로 미국 펀드가 한국 기업을 공격하는 방편이 됐다.

이번 소송을 액면 그대로 봐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합의금이나 노린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차에 대한 자신들의 요구 관철에 무게를 둔 다목적 포석일 가능성이 크다. 엘리엇은 1조원 규모의 현대차·현대모비스·기아차 주식을 보유 중인데, 현대차·현대모비스 합병, 고배당 등을 요구해왔다.

정작 주목되는 대목은 이번 엘리엇의 소송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 국민연금의 찬성 결정을 ‘적폐’로 규정한 정부 발표와 맞물려 진행된다는 점이다. “앞서 한국 정부의 결정으로 우리가 손해를 봤는데, 그 판단에 대해 지금 정부가 잘못됐다고 한 만큼 책임을 지라”는 논리다. 법원도 국민연금의 찬성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판결을 내놔 엘리엇을 도와준 꼴이 됐다. 그간 증권시장에서는 두 회사의 합병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다수의견이지만, 정부의 적폐몰이가 투기자본에 힘을 실어준 결과가 된 것이다.

자가당착 상황에 처한 정부의 고민이 무척 커지게 됐다. 하지만 과거지향적 관점에 빠진 채, 전쟁을 방불케 하는 국제시장의 냉정한 기업경영권 다툼과 투자환경 변화를 외면해온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고 지속가능하면서 현실성 있는 지배구조를 갖추도록 하는 일이다. 삼성물산이나 현대차만의 일도 아니다. 이런데도 기업이 반대하는 다중대표소송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등의 도입을 한사코 밀어붙일 텐가. “정부가 외국계 투기자본과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말이 나와선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