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세계화 최대 원동력, FTA보다 컨테이너 발명
1만2000년 전까지 유목생활을 하던 인류는 지구상에서 가장 찬란한 문명을 만들어냈다. 알람시계 소리에 눈을 뜨고, 면도기로 면도를 하고,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어 스마트폰으로 조간 신문을 읽고, 컴퓨터를 켜 옆 부서에서 날아온 이메일을 읽는 우리의 일상은 무엇 때문에 가능해진 걸까.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 수석칼럼니스트인 팀 하포드가 내놓은 신간 《팀 하포드의 경제학 팟캐스트》는 그 답으로 ‘쟁기의 발명’을 지목한다. 수렵과 채집활동을 하던 인류는 강 유역에 정착한 뒤 처음에는 날카로운 막대기를 이용해 개간작업을 했다. 쟁기는 건조하고 자갈이 많은 토양을 개간하기 위한 최고의 농기구였다. 2000년 전 발토판 쟁기(흙을 파고, 식물 뿌리를 자르고, 토양을 뒤섞는 일을 한꺼번에 하는 쟁기)의 개발은 척박한 유럽 북부 지역의 농업 생산성을 크게 증가시켰다.

무거운 농기구인 쟁기질이 남성의 몫으로 돌아가면서 여성은 점차 집안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일을 전담하게 됐다. 인류 문명이 수렵채집에서 농경 체제로 넘어가면서 인류의 평균 신장은 약 15㎝ 줄었고, 기생충 등으로 인한 다양한 질병도 생겨났다. 저자는 “쟁기는 인류의 풍요와 불평등을 동시에 가져왔고 다양한 형태의 쟁기는 다양한 형태의 문명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현대 경제 시스템을 이루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50가지 발명품을 책에서 소개한다. 단순히 흥미로운 발명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50가지 발명 이야기를 통해 경제학 원리를 알기 쉽게 풀어놓는다.

저자는 인기 있는 스타 1%가 나머지 99%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슈퍼스타 경제’가 발생한 이유로 ‘축음기의 발명’을 꼽는다. 19세기 초에도 유명 스타 가수들이 있었지만 이류 가수들도 라이브 공연으로 먹고살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가수의 노래를 집에서 들을 수 있게 된 이후 이류 가수들은 먹고살 걱정을 해야만 했다. 또한 세계화를 이끈 최대 원동력은 자유무역협정(FTA)이 아니라 컨테이너의 발명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부두 창고에서 화물 품목을 일일이 기록하고 직접 사람이 물건을 날라야 했던 복잡한 무역 과정이 컨테이너 도입으로 간편해지고 운송 비용도 줄어들었다. 이 덕분에 제조업체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장을 세울 수 있게 됐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