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민생은 없고 정략만 남은 개헌 논란
헌법은 나라의 근본 규범이다. 국가의 이념, 보편 규범, 통치 구조를 담는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헌해야 하는 근본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지난 대선 공약이었다는 명분을 내세울 뿐 지금 헌법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5년 단임제를 바꾸면 ‘국민의 삶’이 어떻게 나아지는지 설명이 없다. ‘국민’을 ‘인간’으로, ‘근로자’를 ‘노동자’로 용어를 바꾸는 일이 그렇게 시급한 과제인지도 의문이다. 또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과 지방선거 동시 실시에 따른 비용 절감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중앙과 지방의 동시 국정공백 발생은 어떻게 할 것인지 간과했다.

이번 개헌을 둘러싼 정치에는 정략만 춤추고 국민의 고단한 삶은 뒤로 밀려 있다.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개헌안을 만들 때 ‘국민’을 안중에 뒀는지 의문이다. 홈페이지를 통해 20일 동안 국민의 의견을 곁눈질했을 뿐이다. 한 달 만에 속성으로 개헌안을 만들려니 국민 논의와 의견 수렴이 부실했다. 법무부 장관이 아닌, 청와대의 개헌안 발표는 국민을 수준 이하로 보고 있다는 증거다. 또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바꾸겠다는 설명뿐 정작 조문은 마지막에 공개했다. 3일 동안 실체 없는 개헌안을 청와대가 발표한 것은 국민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제왕적 태도에 기인한다.

5년 단임 대통령을 4년 연임으로 바꿔야 하는 이유도 명확지 않다. ‘2016년 촛불’은 “제왕적 대통령은 다시는 안 된다”고 했는데 대통령 연임 가능성 때문에 권한이 대폭 커지는 정반대의 개헌안을 제시했다.

사실 1987년 헌법의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집권 연장을 꿈꾸는 대통령을 다시는 없게 하겠다는 국민적 열망을 헌법에 담은 것이다. 재임을 허용할 경우 권력 기반을 다진 대통령이 헌법을 고쳐 재집권을 꾀할 가능성을 단임의 임기로 차단하는 절묘한 장치였다. 그리고 4년마다 돌아오는 대선이라는 큰 부담을 1년이라도 늦춰 보겠다는 고민의 결과였다. 반대로 4년 연임 대통령은 연임을 위한 포퓰리즘적 재정 지출이라는 부작용이 크다. 민주당은 국민 여론이 4년 연임제를 가장 많이 지지한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국회의장실이 지난해 7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선호 1위였다.

청와대의 ‘제왕적 개헌’ 추진은 정략적 계산에 근거한다. 2016년 국정농단 촛불시위→박근혜 대통령 탄핵→대선으로 정권 획득→적폐 청산→지방분권과 4년 연임 개헌→남북 정상회담 정례화→국민소환제와 2020년 총선을 통한 보수정치 세력의 완전한 괴멸→20년 연속 집권의 완성이라는 시나리오 속의 한 과정으로 보인다. 결국 대통령과 여당은 이번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개헌을 추진할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면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 13년 집권이 가능하고, 그 기반으로 21년 집권으로 내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남미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사회주의 정권과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민주사회주의 정권의 집권 연장처럼 반독재 좌파정권의 장기집권을 대한민국이 염려해야 할 때가 올지 모른다.

민주당의 재집권 시나리오를 눈치챈 자유한국당은 ‘분권형 대통령제와 국회 총리 추천’의 권력구조 개편 개헌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분권형 대통령제와 책임총리제’라는 국민에게 낯설고 검증되지 않은 제도를 들이밀고 있어 우려된다. 특히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면 대통령과 총리 간 협력은 당연히 할 것으로 짐작하는데 국가적 차원의 권력투쟁을 유발할 수 있음을 예상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이 지금은 한국당의 ‘분권형 대통령제’를 비판하고 있지만 대선 전까지 자신들이 심각하게 도입을 고려했던 권력구조였다. 또 개헌과 관련해 바른미래당은 “제왕적 대통령의 오만”, 민주평화당은 “개헌 협박”이라고 논평했지만, 이들의 본심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인한 자당 국회의원의 증가다.

결국 6월 개헌이든, 10월 개헌이든 정략만 있고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작년 혼인율은 43년 만에 최저이고 청년실업, 집값, 고령화·인구감소 문제가 국민을 짓누르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이념 지향만 확고하다면 지금부터라도 정치권은 개헌 논쟁을 중단하고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도 나쁘지 않다. 제왕적 대통령의 출현은 사람이 문제지 제도를 탓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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