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승차공유 1위 기업인 그랩(Grab)의 앤서니 탄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사진)는 19일 “우리는 더 이상 단순한 승차공유 회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탄 CEO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랩이 새로운 모빌리티(이동성)의 핵심 기반인 승차공유를 넘어 모바일결제 플랫폼, 동남아 최초의 소비자 데이터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2년 말레이시아에서 그랩을 창업했다. 그랩은 지난 1년간 급성장했다. 올해 1월 기준으로 동남아 8개국, 178개 도시에 진출했다. 앱(응용프로그램) 다운로드가 8100만 회, 가입 운전자는 240만 명에 달한다. 동남아에서 미국 승차공유 거대 기업인 우버를 눌렀다.

그랩은 택시호출 서비스로 시작했지만 곧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것을 깨닫고 개인차량을 서비스에 추가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오토바이를, 필리핀에서는 3륜자동차(툭툭)를 발 빠르게 포함했다. 사업 모델을 확장하는 데 규제 걸림돌은 없었다.

탄 CEO는 “핵심은 모든 사람을 동일한 개인차량 모델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대신 소비자에게 가장 적합한 가격대와 교통수단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랩의 다음 성장동력은 모바일 결제 플랫폼인 그랩페이다. 탄 CEO는 “동남아 6억2000만 명의 인구가 무현금 결제 방식을 활용해 디지털 경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랩은 2014년 전기자동차 및 자율주행차, 모바일 전자지갑 등 신기술 실험이 자유로운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겼다.

▷말레이시아에서 택시를 타면서 겪은 불편함이 창업 동기였다고 들었습니다.

“증조할아버지가 택시기사였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말레이시아에서 일본 차량 수입·판매업을 했습니다. 내 핏속엔 자동차가 흐르고 있는 거죠. 말레이시아 교통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말레이시아 택시 시스템은 비싸고, 늦고, 위험하기까지 해 한마디로 엉망이었죠. 2012년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 친구인 후이 링과 함께 ‘마이택시(MyTeksi)’란 이름으로 택시호출 서비스를 내놓았습니다. 스마트폰을 본 적도 없는 운전자들을 참여시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한 끝에 끈끈한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창업 이후 가장 어려웠던 점과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나요.

“동남아는 매우 파편화한 시장입니다. 하나의 모델로는 각기 다른 시장에서 효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특정 시장에 맞춤형 모델을 구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랩은 진출한 178개 도시에 맞춤화한 기술을 지원하기 위해 엔지니어링을 강화하고 연구개발(R&D)에 투자를 늘렸습니다. 벵갈루루 베이징 호찌민 자카르타 시애틀 싱가포르에 6개의 글로벌 R&D 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동남아 승차공유 회사 가운데 가장 큰 규모죠.”

▷일반차량 호출 서비스인 우버와 달리 그랩은 택시호출 서비스로 시작했습니다.

“택시호출 서비스로 시작했지만 곧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것을 깨닫고 개인소유 차량을 서비스에 추가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선 오토바이, 필리핀에선 3륜자동차 등 다른 교통수단을 발 빠르게 포함하는 식이었죠. 그랩 사용자들은 택시와 개인차량, 오토바이, 3륜자동차, 자전거, 셔틀버스에 이르기까지 어떤 경쟁 서비스보다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경쟁업체처럼 모든 사람을 동일한 개인차량 모델에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았습니다. 대신 소비자들에게 가장 적합한 가격대와 교통수단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가 진출한 각국 정부와도 매우 협력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규제당국은 사회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그랩만의 차별화된 시장 확대 전략이 있을 텐데요.

“그랩은 우버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비즈니스입니다. 우리는 동남아 최고 모바일 플랫폼입니다. 하나의 전자지갑을 통해 통근부터 식사, 쇼핑까지 고객에게 일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8개국, 약 400만 명이 매일 그랩 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랩페이의 경쟁자는 현금입니다. 동남아 수백만 명의 사람에게 무현금 결제 서비스와 소액대출에 대한 접근성도 높여주고 있습니다.”

▷그랩페이가 동남아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동남아는 독특한 방식으로 디지털화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결제 인프라가 부족한 탓에 대리점과 편의점 등의 결제 계정을 통해 온라인 구매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은행 계좌가 없는 취약계층이나 영세 사업자에게 소액대출, 자금 조달, 리스 등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미 운전자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그랩페이는 지금보다 수백 배 이상 커진 5000억달러 규모의 시장을 열 것입니다.”

▷‘모빌리티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문제는 없습니까.

“동남아 모빌리티 문제는 하나의 대기업이나 정부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통일된 결제 방법을 갖추고 있으며 데이터 처리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기술회사에 의해 해결될 것입니다. 그랩은 동남아 정부 및 파트너사들과 협력해 다양한 교통수단을 한 번에 예약·결제하는 ‘멀티모달’ 교통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입니다.”

▷동남아 시장에 진출할 한국 기업에 조언을 부탁합니다.

“동남아 시장은 지리, 문화적 측면뿐만 아니라 언어, 경제 발전, 인프라 측면에서도 파편화돼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 맞춤형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으려면 현지 주체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소비자가 어디를 가고, 어떻게 소비하고,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랩페이와 승차공유 서비스를 활용한다면 동남아 소비시장을 겨냥한 최초의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