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오른팔' 왕치산(王岐山·69)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국가부주석으로 복귀했다.
지난해 10월 중국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물러나 은퇴하는 듯했던 왕 전 서기는 17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전체회의에서 찬성 2천969표, 반대 1표의 압도적인 표결로 국가부주석에 공식 선출됐다.
지난 5년간 중국 반부패 사정을 진두지휘한 실세로 시 주석 권력강화의 최대 공신이었던 왕치산은 앞으로 시 주석의 당정군 절대권력 구축을 보조하며 집권연장, 나아가 장기집권의 기틀을 다지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전인대 개막식에 7인 상무위원 바로 뒤에서 입장한 다음 상무위원들 바로 옆에 앉은 그에게는 이미 '제8 상무위원'이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사실상 권력서열 2위의 지도자로 시 주석을 뺀 나머지 상무위원 6명보다 높은 위상을 차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공산당에서 퇴임한 상무위원의 복귀는 전례가 드문 일이다.
1993∼1998년 국가부주석을 지낸 '홍색 자본가' 룽이런(榮毅仁) 이후 20년 만에 비(非) 중앙위원이 국가부주석을 맡는 경우가 된다.
혁명 원로인 왕전(王震)이 정치국원에서 물러난 이듬해인 1988년 국가부주석이 된 적이 있었지만 왕치산처럼 상무위원에서 퇴임한 경우는 아니었다.
왕치산의 복귀로 중국 최고지도부 내부의 인사 규칙이었던 7상8하(七上八下·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은퇴한다)도 유명무실하게 됐다.
헌법에서 국가주석 3연임 제한 규정을 삭제한 시 주석의 집권연장 가도에 걸림돌이었던 연령 제한도 의미가 없어지는 셈이다.
왕치산의 귀환은 19차 당대회 이후로도 줄곧 예상돼왔다.
시 주석과 오랜 인연을 바탕으로 절대적 신뢰가 구축돼 있는데다 여러 업무 현안과 쟁점에 능력을 발휘했던 터여서 시 주석이 그를 다시 불러들일 것으로 예상됐다. 시진핑 2기가 출범한 이후에도 왕치산이 중난하이(中南海)에 집무실을 두고 정치국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는 설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왕치산은 지난 1월말 후난(湖南)성의 전인대 대표로 선출되며 자신의 복귀설을 확인했다.
왕치산은 산시(陝西)성에서 지식청년 생활을 시작했던 1969년께 하방된 량자허(梁家河)촌으로 돌아가던 길의 시 주석을 숙소로 데려가 한 이불을 덮고 잤던 끈끈한 인연이 있다.
시 주석에게 5년 선배뻘인 왕치산은 고락을 같이해온 '인생 동지'였던 셈이다.
왕치산은 시진핑 집권 1기 5년간 중앙기율위 서기를 맡아 시 주석의 정적을 제거하며 부정·부패를 처단하는 칼을 휘둘렀던 선봉장이었었지만 사실 그 이전에 20여년 동안 경제·외교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2년 중국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대유행 등 위기 때마다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부총리로서 미국과의 전략경제 대화를 이끌면서 왕치산은 미국 외교가에서도 협상력을 인정할 정도로 노련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따라서 왕치산의 국가부주석 선출은 중국 최고지도부로의 귀환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공인 통상외교 분야로의 복귀이기도 하다.
왕치산은 당장은 리위안차오(李源潮) 전 국가부주석이 맡았던 공산당 중앙외사영도소조 부조장을 맡아 외교 부문을 총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넓은 시야에 통찰력, 노련함을 갖춘 왕치산이 시진핑의 귀를 붙들게 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외사영도소조는 시 주석을 조장으로, 양제츠(楊潔지<兼대신虎들어간簾>) 국무위원이 비서장 겸 판공실 주임을 맡고 있고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비롯한 국방부, 중앙연락부, 국무원 대만판공실 등 당정 주요기관의 수장들이 조원으로 구성돼 있다.
중국 대외전략과 방침을 결정하는 '외교 사령탑'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래서 앞으로 중국 외교는 시진핑-왕치산-양제츠-왕이 라인에 의해 이끌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중에서도 왕치산은 미중 외교에 집중하면서 과거의 '소방수' 경험을 살려 현재 미중 간 최대 현안인 무역갈등 문제를 해소하는 과제를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멀리는 홍콩·마카오 분야까지 관장하며 이 분야에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장쩌민(江澤民) 계열을 밀어내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 현재 임시적 성격이 강한 중앙외사영도소조를 홍콩·마카오업무협조소조, 대만업무영도소조와 통합해 '외교사무위원회'로 상설화하는 방안도 제기된다.
이는 왕치산에게 보다 공식적인 직책을 부여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시사평론가 자오관치(趙觀祺)는 "시진핑 1기에 덩샤오핑(鄧小平)이 정했던 외교전략이 크게 수정된 것과 달리 외교체계의 틀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며 "통폐합된 새로운 외교기구를 통해 왕치산은 앞으로 중국의 국제적 역할을 강화하려는 시진핑 외교전략의 중요 집행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왕치산 복귀의 효과가 외교력의 강화에 그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저승사자'였던 그가 현직에 있다는 존재만으로 정치사회 전반에 반부패 사정이 계속될 것이라는 신호음과 함께 잠재적인 저항, 또는 정적 세력들을 겨냥해서도 정치적 메시지를 내보낼 수 있다.
아울러 시 주석의 권력집중과 함께 원로들의 국정 개입이 축소된 가운데 왕치산이 다소 부실해진 당정 업무의 조정, 계파간 조율의 역할도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왕치산의 행보 하나하나가 시 주석의 절대권력 구축, 나아가 중국의 현재 미래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