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바쁜 '뇌산업 육성' 10년 청사진 내놨지만…
정부가 2027년까지 뇌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논문 100건 이상을 배출하고 연 매출 500억원 이상의 뇌산업 기업을 10곳 이상 설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뇌융합 연구를 촉진해 산업화 기반을 다지겠다는 취지다. 뇌신경과학 분야의 기초연구가 부실한 상황에서 성과 중심의 정책 세우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과학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연 매출 1억원 뇌기업 4곳뿐

한국의 뇌연구기업은 소규모 의료기기 업체나 바이오벤처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연 매출 1억원 이상을 올린 뇌 관련 기업은 4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저도 최근 5년간 설립된 신생 기업으로 뇌신경과학 연구를 실용화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기업은 많지 않다.

해외에서는 이와 반대로 국가 차원의 뇌산업 육성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미국은 2013년부터 ‘브레인 이니셔티브’를 통해 10년간 52조원을 투입했고 유럽연합(EU)도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에 10년간 14조원을 투자했다. 미국은 뇌 관련 산업에 특화된 인큐베이터인 뉴로런치가 등장했고 IBM의 닥터왓슨, 구글의 딥마인드 등 빅데이터 기반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도 뇌 연구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매출 500억원 뇌기업 10곳 육성”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뇌 연구 관련 기업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고 ‘제3차 뇌연구촉진 기본계획’을 공개했다. 과기정통부는 1998년부터 뇌연구촉진법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관련 부처와 함께 10년 단위의 뇌연구촉진 기본계획을 수립해왔다. 이번 3차 기본계획은 올해부터 2027년까지 시행된다. 앞으로 10년간 정부의 뇌 연구 정책 방향과 투자 계획이 담긴다는 점에서 한국 뇌과학 발전을 좌우하는 중요한 지표라는 평가다.

3차 기본계획 시안은 뇌 연구 기반 확충에 주력했던 2차와 달리 산업화에 중점을 뒀다. 실험실 위주로 진행된 뇌과학 연구를 산업 현장으로 가져와 실용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창업을 장려하기보다 오히려 규제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부와 연계한 시험-평가-인증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게 대표적이다.

◆연구 성과는 지지부진

정부는 뇌 연구 분야별로 누적 피인용 100회 이상의 세계적인 논문을 4배 이상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2010년부터 4년간 한국 신경과학 과학기술논문색인(SCI) 논문의 피인용 횟수는 5.61회로 세계 평균인 7.93회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뇌연구촉진 기본계획이 시행된 1998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인정받은 국내 논문(IF10 이상)은 1건에서 2017년 49건으로 늘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정부의 연구개발(R&D) 투자금은 493억원에서 1367억원으로 2.8배 늘어난 것에 비해 연구 성과는 제자리걸음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과학계는 논문 숫자에 집착하기보다는 뇌 연구 분야의 예산을 늘리고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창조적인 연구와 창업을 장려해야 하는 과기정통부가 신약이나 치매 치료 등 의약학 분야의 결과물에만 집중한 정책을 세우고 있다”며 “기초연구와 뇌 연구 빅데이터 등 공유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우선”이라고 꼬집었다. 과기정통부는 업계 의견을 수렴해 2분기에 3차 기본계획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