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명 뽑는 한전 2만4000명 몰려
지방이전으로 지역 응시자도 늘어
출신학교도 前보다 더 다양해져
"실력만 보자"… 어려워진 필기에
합격자 60%가 서울·수도권 출신
블라인드 채용으로 지원자 수가 늘어난 것도 특징이다. 600명을 뽑은 한국전력공사의 신입채용에는 2만4000여 명이 몰려 역대 최대 지원 규모를 보였다. 국민건강보험에는 3만 명 이상 지원했고, 100명을 선발한 수자원공사에도 1만5000여 명이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윤정욱 국민건강보험공단 인사부장은 “공공기관의 지방이전과 신규채용 규모가 늘면서 지역 대학생 지원이 많이 늘어난 것이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학교, 학점, 전공 등 기재란이 없어지면서 지원 문턱이 낮아진 것도 지원자 수 증가에 한몫했다. 공공기관 입사 지원자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입사지원서 기입 양식이 간소화되면서 채용담당자들의 고민도 커졌다. 서류전형을 할 수 있는 정보가 없는 데다 예년보다 더 많은 지원자가 몰렸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일정 기준을 충족한 지원자에게는 필기시험 응시 기회를 줬다. 산업은행과 기술보증기금, 수자원공사, 한국도로공사 등 많은 공기업이 서류전형 대신 필기시험 규모를 확대했다. 대신 시험 난이도를 높여 서류전형 문제를 해결했다. 한 금융공기업 인사부장은 “시험 난이도를 높이다 보니 공무원 5급 공채나 공인회계사(CPA) 공부를 한 지원자에게 유리해진 것은 사실”이라며 “앞으로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는 공공기관에는 서울·수도권 출신이 더 몰릴 것”으로 전망했다.
변별력을 위해 전공 필기시험을 새롭게 도입하는 기업도 있다. 한국투자공사는 올해 신입채용부터 전공시험을 추가로 실시하기로 했다. 이정행 한국투자공사 인력개발실 선임은 “지난해 채용 땐 서류전형이 가능해 직업기초능력만으로 평가했으나 이 점수만으로는 적합한 인재를 찾기 어려울 것 같아 전공시험을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역인재 합격자 증가
지방이전 공기업이나 지역에 지사를 두고 있는 기업들의 비(非)수도권 합격자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경북 김천으로 본사를 이전한 도로공사는 지난해 지역인재 합격자 비율이 50%를 넘었다. 대전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도 지역인재가 최종 합격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천승현 도로공사 인사팀 차장은 “지방대학은 공기업 입사준비반을 두면서까지 학생들을 독려하고 있다”며 “시험문제가 어려워지면서 철저하게 준비한 지방대 학생이 많이 입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방이전으로 합격자의 학교 분포도 더 넓어졌다. 한전의 지난해 최종합격자는 74개 대학에서 나왔다. 직전 채용 땐 54개 학교였으나 블라인드 채용 후 20개 학교가 더 늘었다. 기술보증기금은 블라인드 채용 도입 전 19개 대학에서 합격자가 나왔으나 도입 후 24개 학교로 확대됐다. 농협은행도 20곳 늘어난 60개 대학에서 150명의 합격자가 나왔다. 블라인드 채용으로 인한 고령자 합격자는 우려할 수준은 아니었다.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시행령은 취업에 있어 청년 나이를 만 15세 이상 34세 이하로 명시하고 있어서다. 김성택 기술보증기금 인사차장은 “블라인드로 뽑힌 합격자 중 34세 이상자는 각각 1명뿐이었다”고 밝혔다. 한 공기업 인사담당자는 “나이가 신입사원 입사의 결격 요인은 아니지만 입사 후 조직 융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며 “올해부터는 인턴십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인사담당자들은 블라인드 채용이 지원자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는 장점이 있지만 한계도 있었다고 전했다. 김관봉 한전 인사부장은 “채용과정의 투명성이라는 순기능이 있었지만 지원자 입장에선 또 다른 직무경험, 경력 등을 쌓아야 하는 부담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천승현 도로공사 인사차장은 “시험 때도 본인확인이 어렵고, 면접 때도 오로지 지원자의 말에 의존해 평가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윤정욱 건보공단 인사부장은 “지원자의 실수로 인한 허위기재도 부정행위로 간주된다”며 “지원자들은 이력서를 더욱 꼼꼼히 작성해야 하는 한다”고 조언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