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물업계 “납품단가 현실화하라” > 주물업계가 2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납품단가 현실화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납품단가를 올려주지 않으면 다음달 26일부터 공장 가동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 주물업계 “납품단가 현실화하라” > 주물업계가 2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납품단가 현실화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납품단가를 올려주지 않으면 다음달 26일부터 공장 가동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20여 명의 직원을 둔 경기도 소재 A주물업체 K사장은 한 달째 가슴이 답답해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이 회사는 지난달 초 원·부자재 공급업체로부터 부자재인 연삭숫돌 가격을 13% 올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K사장은 올려주지 않으면 납품을 끊을 수밖에 없다는 말에 수용했지만 정작 자신이 납품하는 업체에는 단가 인상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 그는 “우리 제품은 일본 및 중국 기업과 경쟁하는 품목이어서 단가 인상 얘기를 하기가 조심스럽다”며 “해야 할 말도 못하고 있으니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주물업체는 물론 도금 열처리 단조 등의 뿌리산업과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업황이 좋지 않은 관련 산업의 중소기업도 A사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하소연한다. 한 관계자는 “국내 중소기업 중 절반에 가까운 47.3%가 대기업 및 중견기업 협력업체”라며 “이들은 최저임금과 원자재가격 상승에도 수년간 납품단가를 올리지 못해 생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협상력 떨어져 단가 못 올려

22일 주물업계 대표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공장 가동 중단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납품단가 인상을 요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서병문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경기침체로 기간산업인 주물업체들의 최근 5년간 평균 매출이 31.7% 줄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전기료, 원·부자재 가격 등이 크게 올랐는데도 수요업체들은 납품단가를 현실화하지 않고 있어 중소주물업계 전체가 존폐기로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주물업계는 지난해 일부 주문업체가 원·부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가격에 반영해줬으나 최저임금과 전기료 상승분은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주물업체들은 10년 전인 2008년 납품단가를 올려달라며 나흘간 전국적으로 조업을 중단한 적이 있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인한 기업 간 갈등은 도금 열처리 등 뿌리산업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대기업의 2~4차 협력업체인 데다 협상력이 떨어져 납품단가 인상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신정기 한국표면처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도금업체들 역시 최저임금 인상, 각종 원·부자재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납품단가를 올리지 못한 기업이 많아 수익성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의 고민도 깊다. 거래처인 조선 자동차 가전 등 상당수 업종이 경기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거나 이미 주력공장을 중국 베트남 등 해외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김경만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최저임금 인상 등 원가 상승 요인이 있을 때 모기업과 수급기업이 이를 자율적으로 반영하는 기업문화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이런 기업 간 갈등은 이제 시작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며 “납품단가 현실화가 안 되면 조만간 갈등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공공시장 단가도 그대로

공공시장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올랐지만 조달청은 구매가격을 동결해 중소기업의 부담이 커졌다.

조달청을 통해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붙박이 가구를 납품하는 A업체의 사장은 “붙박이 가구 납품업체엔 시공인력이 많아 인건비가 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며 “구매가격을 최소 5% 올려주지 않으면 이익을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전체 인력 200여 명 중 30%가 시공인력으로 모두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그는 “최저임금이 전년 대비 16.4% 올라 인건비가 약 4.92% 늘었다”며 “최저임금이 올라 다른 근로자의 임금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해야 하는 연쇄 인상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그만큼의 부담을 업체가 떠안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달청은 “조달시장에서의 구매가격은 제조 원가가 아니라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비상시적으로 결정한다”며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시장가격이 오른 제품도 있지만 중소기업 간 납품경쟁 등 때문에 오르지 않은 제품도 많아 그 경우엔 구매가격에 변동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 중기중앙회 협동조합 이사장은 “조달청부터 최저임금 인상부담을 중소기업에 떠넘기고 있는데 정부가 대기업에 납품단가 현실화를 요구해도 되는지 의문”이라며 “정부부터 조달가격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