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1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20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받고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1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20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받고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사건의 첫 번째 법적 판단은 최씨에 대한 징역 20년이라는 중형 선고로 마무리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13일 선고공판에서 최씨에 대한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최씨에게 벌금 180억원을 명령하고, 72억원을 추징했다.

◆‘안종범 수첩’ 증거 인정

특검의 구형량인 25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는 중형 선고라는 평가다. 재판부는 재단 출연이나 삼성 관련 뇌물수수 등 최씨의 혐의 대부분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연관시켜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사실상 ‘한몸’으로 공모했다고 봤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과 관련해 재판부는 “대통령의 직권을 남용해 기업체에 출연을 강요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증거로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 수첩의 증거 능력을 인정했다. 수첩에 박 전 대통령이 지시한 각종 사업의 구체적 내용이 적혀 있고 이것이 최씨의 재단 설립 및 관련 활동 정황을 설명해준다는 판단에서다. 재판부는 “개별 면담자 사이에 수첩 기재와 같은 내용의 대화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간접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서의 증거 능력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대화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면, 박 전 대통령이 누구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수첩 내용상의 대화를 나눴는지를 추론할 수 있다. 최씨가 박 전 대통령에게 특정 현안을 이야기하면 이를 박 전 대통령이 기업 총수 등에게 전달했다는 증거로서 안 전 수석 수첩의 증거 능력이 효력을 발휘한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결국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한몸’을 잇는 증거라는 특검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인 것이라는 평가다.

최씨가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딸 정유라 씨의 승마 지원비 등 433억원 상당의 뇌물을 받거나 약속한 혐의 중에는 72억9000여만원을 뇌물액으로 인정했다. 정씨에게 사준 말 소유권이 삼성 측에 있고, 뇌물액은 말 무상 사용에 따른 이익액이라고 본 이 부회장 2심 재판부와 달리 말의 실질적 소유권이 최씨에게 있다고 보고 말 구입액을 뇌물액에 포함해서다.

◆포스코 등 기업 강요하며 ‘이권’

재판부는 법조계의 일반적 예상을 뛰어넘는 판결도 내놨다. 롯데그룹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강요를 받으면서 동시에 제3자 뇌물 공여를 했다고 본 점이다. 박 전 대통령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이에 롯데면세점 사업과 관련해 ‘부정한 청탁’이 오갔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신 회장과 독대하면서 하남 체육시설 지원(70억원)을 요청했다”며 “종합하면 최씨가 박 전 대통령에게 지원을 부탁하고 박 전 대통령이 신 회장에게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공동정범 판단이 신 부회장의 제3자 뇌물공여죄까지 인정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대부분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관계를 너무 쉽게 인정하고 있다”며 “공동정범으로 인정할 수 있는 일부 정황이 있다고 하더라도 구체적 증거가 없다면 다른 유죄의 근거로 활용하기엔 어려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서 경영 현안을 도와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받고 그 대가로 K스포츠재단의 해외 전지훈련비 등으로 89억원을 내라고 요구한 혐의(제3자 뇌물 요구)도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말미에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을 질타했다. 재판부는 “광범위한 국정 개입으로 국정 질서가 혼란에 빠지고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사태까지 초래됐다”며 “그 주된 책임은 헌법상 책무를 방기하고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사인(최씨)에게 나눈 박 전 대통령과 피고인(최씨)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