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은 선박을 이용해 수출입 화물을 운송하는 역할을 한다. 선박과 화물은 해운업에서 필수불가결한 두 가지 요소다. 화물은 해운회사에 운임이라는 수입의 원천을 가져다준다. 선박 공급량이 화물 수요량보다 많으면 운임은 떨어져 해운 경기가 나빠진다.

화물은 해운 경기를 결정짓는 것 외에 두 가지 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첫째, 선박을 건조할 수 있게 한다. 해운사는 선박 건조를 위해 외부로부터 70% 이상의 금융을 일으켜야 한다. 금융회사는 해운선사가 대량 화주와 맺은 장기운송계약에 따른 장래취득운임에 대한 채권을 담보로 잡는다. 장기운송계약에 따른 운임은 선사들로 하여금 선박 건조를 가능케 한다.

둘째, 화물이 늘면 국내 조선소 일감이 많아지고 국부가 창출된다. 한국 선주들이 장기운송계약을 많이 가져와서 국내 금융회사로부터 자금을 빌려 한국 조선소에서 선박을 건조하면 일감 부족에 직면한 국내 조선소도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화물은 운임을 매개체로 조선소 수입도 창출하는 기능을 하는 셈이다. 장기운송계약을 일본 선주가 가져간다면 그들은 일본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고 일본 조선소에서 선박을 건조할 것이다.

두 가지 부차적인 기능을 종합해 보면 한국 해운선사들이 국내 대량 화주들과 장기운송계약을 많이 체결할수록 안정적인 운임 수입이 확보되고 국내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해 해운, 조선, 화주는 물론 금융회사까지 모두 상생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의 화주와 해운선사는 항상 밀월관계에 있지는 않았다. 선박이 부족해 운임이 오르더라도 선사들은 화주들의 어려움을 고려해 운임을 낮추지 않았다. 반대로 선박이 남아돌아서 운임이 곤두박질칠 때 화주들이 선사들의 운임을 올려주지 않았다. 한국의 대량화물 장기운송계약 입찰 시 일본 선사들이 선정된 경우도 많았다. 반면 한국 선사가 일본에서 장기운송계약을 따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대량화물의 경우 100% 한국 선사가 운송권을 따오는 것은 침체된 해운과 조선업을 살리는 지름길이 된다.

이런 논의는 장기 침체에 빠진 정기선 운항에도 더 절박하다. 현재 한국의 원양 컨테이너 화물의 국적선사 적취율(국적선사의 국내 화물 수송 비율)은 15%에도 못 미친다. 1990년 중반에는 50%에 이른 적도 있다. 국내 정기선에 대한 한국 화물의 적취율을 50%로 올리면 침체된 원양 정기선사를 살리는 데 큰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다.

선주와 화주 간 상생을 위한 실천적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선주와 화주만의 상생이 아니라 해운, 조선, 물류, 선박금융 등 관련 모든 분야의 내국화 비율이 최소 50%를 달성하도록 해야 한다. 외국에 의존하지 말고 국내 기업 간 상생을 도모하는 것이다. 해운사에 유리한 것만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체 연관 산업 분야의 내국화 50%를 달성하자는 캠페인은 선사들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 형평성에 맞고 설득력도 있다.

둘째, 선사 혹은 화주가 어려울 때 운임을 내려주거나 올려주는 탄력적 운임제도 도입을 계약서에 명기해야 한다. 운임이 낮아 운송인이 손해를 보면 운임을 자발적으로 계약금액보다 15% 올려주고, 반대의 경우에는 15% 낮춰주는 것이다. 이런 상호부조 정신이 계약서에 포함되면 선사와 화주 간 신뢰가 쌓이고 궁극적으로 한국의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