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發) 글로벌 증시 조정만 아니었으면 한국 증시에서 가장 돋보이는 업종 중 하나였을 텐데….”
급락장서 기관 '러브콜' 쏟아진 정유·화학주
화학·정유업종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다. 지난해 12월 이후 한동안 유가가 고공행진함에 따라 화학·정유주는 제품마진 축소에 따른 실적 개선 둔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지난달 하순 이후 유가가 급락 반전하면서 주요 화학·정유주들이 올 1분기에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릴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화학·정유주는 최근 조정장에서 기관투자가들의 ‘타깃’이 되고 있다.

◆화학·정유주 쇼핑 나선 기관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하고 기관이 유가증권시장에서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롯데케미칼(592억원 순매수)이다. 대한유화(174억원·13위) 에쓰오일(146억원·22위) 롯데정밀화학(145억원·23위) 금호석유화학(130억원·27위) 등에도 기관 매수세가 몰렸다.

이들 종목은 기관의 ‘사자’에 힘입어 증시 급락에도 불구하고 조정을 최소화하며 버티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9일 4.89%(1만9500원) 오른 41만8500원으로 장을 마쳤다.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2조9276억원)을 달성했다고 전날 발표하면서 전년보다 2.6배 이상 늘어난 주당 1만500원의 배당금을 지급하기로 한 게 호재로 작용했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롯데케미칼은 수년간 실적 개선이 이어졌지만 배당에는 인색했다”며 “배당금을 크게 늘리기로 한 결정을 긍정적으로 보고 주식을 사들였다”고 말했다.

지난 7일 7.66% 급락한 대한유화는 이후 이틀간 각각 4.15%, 0.31% 오르며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롯데정밀화학은 이달 급락장세 속에서도 1.53% 하락하는 데 그쳤다. 코스피지수 하락률(7.89%)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확대되는 제품 마진

기관이 화학·정유주에 눈독을 들이는 건 최근 유가 하락으로 실적 개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7일 45.88달러를 기록하고 꾸준히 상승궤적을 그리던 유가는 최근 달러 강세 등의 요인에 ‘발목’이 잡혔다. 한국 정유·화학기업들이 가장 많이 수입하는 두바이유는 지난 1일 배럴당 66.73달러를 찍고 하락세로 돌아서 9일 61.22달러로 마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및 이란의 원유 생산 확대와 달러 강세 등으로 유가가 배럴당 50달러대로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원료인 유가가 하락하자 석유 및 석유화학 제품의 마진은 확대되는 추세다. 화학기업들이 생산하는 핵심 제품 중 하나인 에틸렌의 스프레드(제품과 원료 간 가격 차이)는 작년 11월 월평균 t당 692.3달러까지 하락했다가 이후 반등해 지난달엔 773.26달러로 상승했다. 정유기업의 실적을 결정짓는 정제마진(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가격 및 생산비용을 뺀 금액)도 지난달 배럴당 6.2달러(싱가포르 기준)까지 내려갔다가 이달 9일엔 7.5달러로 올랐다.

지난해 하반기 이어진 유가 상승과 올 상반기로 예정된 미국 내 화학설비의 잇따른 준공 등으로 화학·정유주에 대해 반신반의하던 전문가들도 의구심을 지우는 분위기다. 황유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석유 및 석유화학제품은 글로벌 경기 호황에 힘입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올해 내내 이어질 것”이라며 “LG화학 롯데케미칼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등 화학·정유업종 내 주요 기업들이 올해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