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이 해외 현지법인인 필리핀 수비크조선소의 투자 유치에 나선다. 재무 부담을 덜고 지속적인 투자 기반을 마련해 조선업황 회복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연말까지 인천 북항 배후부지를 매각하는 등 자구안을 달성해 채권단관리(자율협약) 체제에서 벗어난다는 계획도 세웠다.
한진중공업 "수비크조선소, 잘나갈 때 투자 유치"
◆수비크조선소 건설로 ‘체력’ 고갈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진중공업은 최근 수비크조선소의 주식 매각, 유상증자 등을 포함한 투자 유치 방안을 수립하기 위해 주요 회계법인과 증권사에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보냈다. 주관사가 선정되면 실사를 거쳐 상반기 후보군을 선정하고 연내에 투자 유치 작업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한진중공업은 2006년 필리핀 수비크만에 길이 550m, 폭 135m의 세계 최대 도크 시설을 갖춘 조선소를 짓기 시작했다. 부산 영도조선소가 좁아 선박 대형화 경쟁에서 밀리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영도조선소의 아홉 배에 달하는 300만㎡ 면적의 수비크조선소에서는 초대형유조선(VLCC)과 컨테이너선 등을 건조하고 군함 등 특수선만 영도조선소에서 짓기로 했다. 수비크조선소는 2008년 선박을 처음 인도한 이후 지금까지 113척을 인도했다.

조선소를 짓는 과정에서 한진중공업의 체력은 급격히 고갈됐다. 2009년 완공까지 6400억원을 투자했고 지난해에는 4700억원을 추가 출자하는 등 2조원을 투입했다. 글로벌 경기 불황에 따른 ‘수주 절벽’까지 닥치면서 비용 부담은 더 커졌다.

이로 인해 조선부문 매출 비중이 절반을 차지하는 한진중공업의 재무상황도 나빠졌다. 2012년 이후 5년째 영업적자(연결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차입금도 2조원으로 불어났다. 부채비율은 518%(지난해 9월 말 기준)까지 올랐다. 지금까지 수비크조선소에 보증한 금액만 1조5000억원에 달해 조선소 상황에 따라 그룹 전체가 흔들리는 재무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

◆건조능력 확인된 지금, 투자 유치 적기

투자 유치는 수비크조선소 경쟁력이 가장 높아진 현 시점이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 조남호 한진중공업그룹 회장의 결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비크조선소는 지난달 26일 프랑스 최대 해운사 CMA CGM에 2만1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인도하면서 초대형 선박 건조 능력을 인정받았다. 한국의 특수강 용접 노하우를 전수받아 초대형 선박 분야에서도 유럽 선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상승세로 돌아선 조선업황도 투자 유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영국 조사기관 클락슨은 올해 세계 선박 발주량이 2780만CGT(재화중량톤수)로 지난해(2322만CGT)보다 19.7%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내년에는 3220만CGT, 2020년에는 4270만CGT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선박 가격도 오름세도 돌아섰다. 클락슨 신조선가지수는 지난해 3월 121로 저점을 찍은 뒤 연말 125를 기록, 소폭이지만 반등했다.

업계에서는 중국 업체 외에도 정부 차원에서 조선해양 설비 확장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싱가포르와 유망 조선소 인수를 물색 중인 유럽 업체 등이 관심을 보일 것으로 관측했다. 한진중공업은 1조원 안팎의 투자를 유치, 보증채무와 현지 차입금 등 2조3000억원에 달하는 수비크조선소 관련 재무 부담을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한진중공업도 올해 말 채권단 자율협약에서 졸업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다대포 공장 부지를 매각하면서 채권단에 제출한 자구안의 50%를 이행한 상태다. 회사 관계자는 “연말까지 1조원 가치의 인천 북항 배후부지 매각을 끝내고 5000억원 규모의 동서울터미널 부지 개발사업도 가시화되면 자구안 달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