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한파로 전력 수요가 늘자 정부가 사흘 연속 기업들에 전력 수요 감축 요청(급전지시)을 내렸다. 급전지시에 응한 기업에는 정부 대신 한국전력이 보상금을 줘야 한다. 이번 겨울 여덟 번의 급전지시로 460억원가량이 지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6일 오전 9시부터 11시30분까지 전력거래소를 통해 기업 2400여 곳에 급전지시를 발령했다. 정부가 요구한 감축량은 2300㎿다. 원전 2기분 이상의 발전량이다. 정부는 지난 24일부터 이날까지 사흘 연속 급전지시를 내렸다. 2014년 제도 도입 후 사흘 연속 급전지시가 발령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전은 2016년 11월부터 1년간 급전지시 보상금으로 2000억원을 기업들에 지급했다. 한 달 평균 166억원 정도를 줬다. 올여름에도 이번 겨울처럼 급전지시가 빈번하게 발령되면 연간 보상비용이 23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급전지시 보상금은 한전이 조성한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충당했으나 지난해부터 한전이 직접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사실상 국민이 낸 전기요금으로 급전지시 기업에 보상해주는 셈이다. 한전 실적이 나빠져 전기요금이 오르면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각에서 나오는 이유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급전지시를 발령하면 발전소를 덜 돌려도 된다”며 “이를 통해 아낀 돈을 기업에 주는 것이기 때문에 한전도 손해는 아니다”고 해명했다.

정부는 전력 수요감축 요청(급전지시)을 하면 기업에 보상이 돌아가기 때문에 기업들도 큰 불만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급전지시 대상 기업들은 “예전처럼 일년에 한두 번 내려오면 상관없지만 지금처럼 한 달에 다섯 번이나 발령되면 손해”라고 주장했다. 급전지시가 내려오면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냉난방기를 끄는 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보상금을 받아도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니 금전적 손실이 발생한다”는 게 기업들의 불만이다.

급전지시 대상 기업은 3580여 곳이다. 이들은 전력거래소와 계약을 맺고 전력 사용을 줄이면 ㎾h당 93원의 보상금을 받는다. 급전지시가 내려오지 않아도 받는 기본금이 있는데 이는 기업별로 ‘전력 사용량을 얼마나 줄일 수 있다’고 제시했는지에 따라 다르다. 급전지시에 응하지 않으면 기본금에서 그만큼의 돈을 삭감한다.

정부는 이들 기업에 기본금을 주기 때문에 급전지시를 발령하지 않으면 오히려 손해라는 주장을 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급전지시에 응하지 않아도 돈을 받지 못할 뿐 별도의 페널티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한 중소기업 대표는 “정부 요청에 응하지 않는 게 눈치가 보여 억지로 참여하는 기업도 많다”고 말했다.

이번 겨울 들어 잦은 급전지시가 내려오는 것은 정부가 전력수요 예측을 잘못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산업부는 작년 12월 확정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17년 동계(2017년 12월~2018년 2월) 최대 전력수요를 8520만㎾로 예상했다. 2015년에는 2017년 동계 최대 전력수요를 8820만㎾로 예측했는데 300만㎾ 줄였다. 원자력발전소 1기의 설비용량이 보통 100만㎾인 점을 감안하면 원전 3기분만큼을 줄여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겨울 최대 전력수요는 오히려 7차 전력수급계획 예상치에 더 가깝다. 지난 25일 최대 전력수요는 8725만㎾였다. 8차 전력수급계획보다 205만㎾를 초과했고, 7차 전력수급계획보다는 95만㎾가 적었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전력이 남는 것은 괜찮지만 모자라면 정전 등 큰 사고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8차 전력수급계획은 완전히 잘못 짜여진 것”이라며 “전력수요가 8차 전력수급계획을 벗어나 계속 늘어나자 기업들에 연일 급전지시를 발동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