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앞 촛불 지키듯 대화 지켜달라"…'남남갈등' 차단하며 지지층도
평창올림픽 이후 한반도정세 불확실성 의식…"북미·다자 대화로 이어가야"
"정치권과 언론도 힘 모아주시길" 낮게 호소…北에도 '역지사지 노력' 주문
'평창 이후' 바라보는 문 대통령 "기적같은 대화 살리자" 호소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조성된 남북대화의 '분위기'를 적극 살려나가자고 직접 호소하고 나섰다.

22일 오후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한 모두발언을 통해서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와 한반도기 사용,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둘러싸고 이른바 '남남(南南)갈등' 조짐이 불거지고 이것이 모처럼 마련된 남북대화의 모멘텀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가 강하게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보수층은 물론이고 진보 지지층인 20·30세대에서 북한의 올림픽 참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문 대통령으로서는 '대국민 호소전'을 통해 남북대화에 대한 국내적 지지도를 높이고 내부 논란을 조기에 불식시켜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단순히 평창올림픽 성공 개최라는 차원을 넘어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해결 프로세스를 양대 축으로 한반도 평화구조를 정착시켜나가는데 있어 '결정적 시기'를 맞고 있다는 문 대통령의 상황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이 이날 모두발언에서 "극적으로 마련된 대화" "기적처럼 만들어낸 대화의 기회"라는 수사(修辭)를 동원한 것은 이런 인식을 투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첫 머리에서 "우리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평화 구축의 길을 여는 소중한 기회를 맞고 있다"며 "이 시기에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남과 북을 마주앉을 수 있게 만들어준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참가, 그리고 그것을 위한 남북대화는 그 자체로서 매우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동시에 이 같은 대화의 모멘텀이 긴밀하게 '관리'되지 않을 경우 별 의미없게 '유실'(流失)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지금의 대화 분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 아무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만약 그것(평창올림픽 성공 개최)만으로 끝난다면 그 후에 우리가 겪게 될 외교안보상의 어려움은 가늠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또 다시 대화의 계기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언급은 앞으로 '평창 이후' 전개될 수 있는 한반도 상황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세분석에 터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우리 정부가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에 앉아있고, G2(주요 2개국)인 미국과 중국의 전폭적 지지 속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해법 모색을 주도하고 있지만, 평창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는 상황이 매우 가변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 관측이기 때문이다.

오는 4∼5월께 북한의 획기적 태도변화와 같은 '사정변경'이 없는 한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재개될 가능성이 크고, 북한이 이에 반발해 추가 도발을 꾀한다면 한반도 정세는 또다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 대통령은 모처럼 조성된 남북대화의 분위기를 살려 북미간 대화로 연결시키고 이를 다시 6자회담과 같은 다자대화로 이어가는 것이 한반도 평화정착에 있어 매우 긴요한 수순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올림픽 덕분에 기적처럼 만들어낸 대화의 기회를 평창 이후까지 잘 살려 나가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며 "남북대화가 미국과 북한 사이의 대화로 이어지게 하고 다양한 대화로 발전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그래야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문 대통령이 이날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형태로 '초정파적' 지지를 요청한 점이다.

문 대통령은 "지금 같은 기회를 다시 만들기 어려운 만큼 국민께서는 마치 바람 앞에 촛불을 지키듯이 대화를 지키고 키우는 데 힘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정치권과 언론도, 적어도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일만큼은 힘을 모아주시기를 당부한다"고 밝혔다.

'촛불'은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이후 문재인 정권을 들어서게 한 결정적 계기일 뿐만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문 대통령이 민심과 동일시 한 상징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문 대통령이 20·30 세대 등 핵심 지지층까지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놓고 논란을 빚고 있는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풀이가 나온다.

동시에 이번 올림픽을 반드시 '평화 올림픽'으로 치르겠다는 강한 의지와 절박감이 얼마나 강한지를 확인시켜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그런 한편으로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는 북한 당국을 향해서도 '메시지'를 던졌다.

문 대통령은 "오랜 단절 끝에 마련된 대화여서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성공을 위해서는 남과 북이 함께 역지사지해 나가면서 차근차근 극복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던 점검단이 뚜렷한 이유없이 하루 일정을 늦춘 것이나 조선중앙통신이 남한 내의 대북제재 논란을 비난하는 등의 모호한 태도를 보인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다만 공정성 훼손 논란이 일고 있는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논란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예민한 이슈를 언급하지 않은 채 평창동계올림픽이 남북대화 국면에서 가지는 의의를 부각한 것은 단일팀 이슈 등과 관련한 정부의 결정을 이해해줄 것을 우회적으로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을 승인하면서 "평창동계올림픽이 한반도의 더 밝은 미래를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 한 만큼 이제 성공적 개최에 힘을 모으자는 뜻으로도 읽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