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보하는 '바이오 한국'… 멕시코·칠레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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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한림원 등 3개 단체 보고서
부처·연구자 칸막이 겹겹… 국가 신약 로드맵 짜겠나
의료 빅데이터 활용 두고 3년째 검토만 '되풀이'
부처 간 나뉜 R&D 전략… 신약개발 본부 만들어 융합
연간 1000억 기술료 받는 제약사 2개 이상 배출해야
부처·연구자 칸막이 겹겹… 국가 신약 로드맵 짜겠나
의료 빅데이터 활용 두고 3년째 검토만 '되풀이'
부처 간 나뉜 R&D 전략… 신약개발 본부 만들어 융합
연간 1000억 기술료 받는 제약사 2개 이상 배출해야
한국의 바이오산업 경쟁력이 칠레 멕시코 말레이시아 등의 수준으로 퇴보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생명과학 연구에 대한 과도한 규제와 투자 의지 부족 등이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국공학한림원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공동으로 이 같은 내용의 ‘코리아 바이오헬스의 도전과 과제’ 보고서를 작성,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발표한다.
보고서는 미국 바이오컨설팅업체 푸가치컨실리엄의 바이오 분야 신흥국 평가 결과를 인용, 한국이 2016년에는 싱가포르 이스라엘 대만과 함께 상위권에 포함됐지만 지난해엔 칠레 멕시코 등과 함께 중위권으로 추락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내는 세계 바이오산업 전망에서도 한국은 2009년부터 경쟁력을 잃으면서 2016년엔 순위가 24위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공학한림원, 한국과학기술학림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등 국내 과학과 의료 산업을 대표하는 3개 한림원이 공동 추진한 ‘코리아 바이오헬스의 도전과 과제’ 보고서 작업에는 의학과 생명과학, 제약, 의료기기, 정보기술(IT) 등 전문가 14명이 참여했다.
보고서는 의료 빅데이터 활용 등 신기술에 대한 정부의 모호한 태도, 환자 치료와 기초 연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의료계 및 연구계 풍토, 낙후한 투자 문화를 경쟁력 상실을 낳는 원인으로 지목했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박하영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한국은 연구개발(R&D) 경쟁력과 정부 투자가 뒷받침하고 있어 바이오 헬스산업이 당장 위기에 빠졌다고 속단할 수 없지만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의료 빅데이터 할지 말지 입장 없는 정부
한국은 2009년 바이오 R&D 투자 1조원 시대를 열고 불과 4년 만인 2013년에 2조원 시대, 2016년 투자액 3조원 시대를 열었다. 연구 투자가 늘면서 연구 품질을 가늠하는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 경쟁력은 세계 11위, 특허 경쟁력은 9위에 올랐다. 하지만 해외 평가기관들의 평가는 다르다. 한결같이 한국의 바이오산업 혁신과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시장 친화적인 환경과 창업 등 혁신에 대한 노력 부족, 실패 확률이 높은 분야에 투자의지 부족을 꼽는다.
질병 진단과 신약 개발에서 파급력이 큰 분야인 의료 빅데이터의 활용 문제는 대표적인 사례다. 박 교수는 “박근혜 정부부터 시작한 의료 데이터 활용 문제를 두고 정부가 3년 넘게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며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태도를 취하기보다 첨단기술을 통해 건강보험 재원을 아끼겠다는 철학을 갖고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끝을 보는 연구 문화 조성돼야
끝을 보지 않는 한국 제약업계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미약품은 2015년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에 5조원 규모 당뇨 신약기술을 수출한 데 이어 독일 베링거잉겔하임에도 항암 신약기술을 수출했다.
하지만 제약사들이 일부 계획을 변경해 계약이 해지되거나 축소되면서 기술 수출에 따른 수입금이 줄어들었다. 보고서는 제약사들이 신약기술 수출에만 머무르면 이런 상황은 계속될 것이라며 자체 제품을 내놓는 끝을 보는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환자 치료에만 집중하려는 의료계 오랜 풍토도 병원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연구 역량이 우수한 의사에게 연구 시간을 보장하는 ‘프로텍션 타임제도’를 비롯해 다른 학문과의 융합을 촉진하기 위해 의학전문대학원 제도 폐지와 함께 중단된 ‘의사과학자(MD-PhD)’ 양성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국가 신약개발 가상본부 필요
보고서는 가장 시급한 문제인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려면 결국 청와대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산하 ‘바이오헬스 특별위원회’를 설립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혁신본부에 바이오 헬스 전략을 담당할 전담조직 신설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산학연뿐 아니라 연구자 사이 칸막이를 과감히 없앨 실질적 방안도 제시했다. 그간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자들은 다른 부처에서 연구비를 받은 연구자의 연구 현황을 알 수 없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연구가 다음 단계로 이어지지 못하고 중복 연구만 늘어나 제품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보고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약개발 컨트롤타워인 ‘국가 신약개발 가상본부’를 운영하고 신약개발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국가 신약개발 지도’를 작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의 바이오헬스산업 발전에서 중국의 역할론도 강조했다. 중국은 2016년 국민건강 증진과 의료위생환경 개선, 헬스산업 육성을 내용으로 담은 ‘건강중국 2030 계획요강’을 발표했다. 중국의 주요 바이오클러스터와 연계해 중국의 막대한 자본이 국내 기술에 흘러들어오고 정보를 공유할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석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은 “바이오산업에 투자금이 유입되고 벤처 투자가 활성화되는 투자 생태계를 조성하려면 단기적으로 한 해 1000억원 이상 경상기술료를 10년간 받는 기업 2개와 1000억원 이상의 기업가치로 글로벌 기업에 매각되는 벤처기업 5개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보고서는 미국 바이오컨설팅업체 푸가치컨실리엄의 바이오 분야 신흥국 평가 결과를 인용, 한국이 2016년에는 싱가포르 이스라엘 대만과 함께 상위권에 포함됐지만 지난해엔 칠레 멕시코 등과 함께 중위권으로 추락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내는 세계 바이오산업 전망에서도 한국은 2009년부터 경쟁력을 잃으면서 2016년엔 순위가 24위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공학한림원, 한국과학기술학림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등 국내 과학과 의료 산업을 대표하는 3개 한림원이 공동 추진한 ‘코리아 바이오헬스의 도전과 과제’ 보고서 작업에는 의학과 생명과학, 제약, 의료기기, 정보기술(IT) 등 전문가 14명이 참여했다.
보고서는 의료 빅데이터 활용 등 신기술에 대한 정부의 모호한 태도, 환자 치료와 기초 연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의료계 및 연구계 풍토, 낙후한 투자 문화를 경쟁력 상실을 낳는 원인으로 지목했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박하영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한국은 연구개발(R&D) 경쟁력과 정부 투자가 뒷받침하고 있어 바이오 헬스산업이 당장 위기에 빠졌다고 속단할 수 없지만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의료 빅데이터 할지 말지 입장 없는 정부
한국은 2009년 바이오 R&D 투자 1조원 시대를 열고 불과 4년 만인 2013년에 2조원 시대, 2016년 투자액 3조원 시대를 열었다. 연구 투자가 늘면서 연구 품질을 가늠하는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 경쟁력은 세계 11위, 특허 경쟁력은 9위에 올랐다. 하지만 해외 평가기관들의 평가는 다르다. 한결같이 한국의 바이오산업 혁신과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시장 친화적인 환경과 창업 등 혁신에 대한 노력 부족, 실패 확률이 높은 분야에 투자의지 부족을 꼽는다.
질병 진단과 신약 개발에서 파급력이 큰 분야인 의료 빅데이터의 활용 문제는 대표적인 사례다. 박 교수는 “박근혜 정부부터 시작한 의료 데이터 활용 문제를 두고 정부가 3년 넘게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며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태도를 취하기보다 첨단기술을 통해 건강보험 재원을 아끼겠다는 철학을 갖고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끝을 보는 연구 문화 조성돼야
끝을 보지 않는 한국 제약업계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미약품은 2015년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에 5조원 규모 당뇨 신약기술을 수출한 데 이어 독일 베링거잉겔하임에도 항암 신약기술을 수출했다.
하지만 제약사들이 일부 계획을 변경해 계약이 해지되거나 축소되면서 기술 수출에 따른 수입금이 줄어들었다. 보고서는 제약사들이 신약기술 수출에만 머무르면 이런 상황은 계속될 것이라며 자체 제품을 내놓는 끝을 보는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환자 치료에만 집중하려는 의료계 오랜 풍토도 병원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연구 역량이 우수한 의사에게 연구 시간을 보장하는 ‘프로텍션 타임제도’를 비롯해 다른 학문과의 융합을 촉진하기 위해 의학전문대학원 제도 폐지와 함께 중단된 ‘의사과학자(MD-PhD)’ 양성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국가 신약개발 가상본부 필요
보고서는 가장 시급한 문제인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려면 결국 청와대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산하 ‘바이오헬스 특별위원회’를 설립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혁신본부에 바이오 헬스 전략을 담당할 전담조직 신설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산학연뿐 아니라 연구자 사이 칸막이를 과감히 없앨 실질적 방안도 제시했다. 그간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자들은 다른 부처에서 연구비를 받은 연구자의 연구 현황을 알 수 없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연구가 다음 단계로 이어지지 못하고 중복 연구만 늘어나 제품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보고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약개발 컨트롤타워인 ‘국가 신약개발 가상본부’를 운영하고 신약개발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국가 신약개발 지도’를 작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의 바이오헬스산업 발전에서 중국의 역할론도 강조했다. 중국은 2016년 국민건강 증진과 의료위생환경 개선, 헬스산업 육성을 내용으로 담은 ‘건강중국 2030 계획요강’을 발표했다. 중국의 주요 바이오클러스터와 연계해 중국의 막대한 자본이 국내 기술에 흘러들어오고 정보를 공유할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석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은 “바이오산업에 투자금이 유입되고 벤처 투자가 활성화되는 투자 생태계를 조성하려면 단기적으로 한 해 1000억원 이상 경상기술료를 10년간 받는 기업 2개와 1000억원 이상의 기업가치로 글로벌 기업에 매각되는 벤처기업 5개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