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범 화백이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에 출품할 ‘꿈의 산’을 설명하고 있다.
김가범 화백이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에 출품할 ‘꿈의 산’을 설명하고 있다.
김가범 화백(71)은 어릴 적 유난히도 색감의 유혹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젊은 시절 미스코리아 지역예선에 뽑히고도 보수적인 집안의 반대로 본선에 가지 못했던 그는 부모 몰래 혼자서 미대 입시를 준비했다. 미대에 가려고 했으나 시집이나 가라는 부모 만류에 화가의 꿈을 접었다. 붓을 잡은 건 1995년. 사업하는 남편을 따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머물며 미술학교 노스리지와 피어스칼리지를 다녔다. 초기에는 주로 파스텔 화풍의 정물화와 인물화를 그리다가 곧바로 단색화에 빠져 인간의 소통과 치유 문제를 색채 미학에 녹여냈다. 그의 단색화는 독일 쾰른, 스위스 바젤, 미국 뉴욕과 마이애미 아트페어에서 팔려나가면서 단번에 유망 작가군에 이름을 올렸다. 이탈리아 밀라노 시립미술관과 중국 베이징미술관, 일본 도쿄 닛치갤러리 등에서 잇달아 개인전을 열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에게 최근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오는 26~28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 2018’에 초대받은 것. 구상과 추상이 어우러지고, 색의 미감을 강조하는 서양화와 선의 미학을 중시하는 동양화가 공존하는 작품이라는 게 초청 이유다.

미술 소재를 주로 산에서 찾는 김 화백은 이번 싱가포르 초대전 주제를 ‘치유의 색’으로 정하고, 산들이 내뿜는 원색을 화면에 아우른 단색화 20여 점을 건다. 작가는 “전후 일본 미술의 가장 중요한 경향 중 하나인 모노파(物派)의 중심에는 한국 화가들이 있었다”며 “싱가포르 화단에 한국 단색조 회화의 세계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화로 풀어낸 그의 대표작 ‘꿈의 산’ 시리즈는 ‘선율의 회화’로 불린다. 외형을 본떠 베끼는 게 아니라 선(禪)적인 무아의 경지를 추구한다. 그는 “점점이 놓인 화려한 색감과 자연의 경이로움으로부터 젠(Zen·禪)의 개념을 찾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며 “드라마틱하게 느껴지는 묵직한 산의 형상에는 다양한 색깔이 숨어 있다”고 설명했다.
김가범 화백이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에 출품할 ‘꿈의 산’.
김가범 화백이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에 출품할 ‘꿈의 산’.
김 화백의 작품에는 색 덩어리가 꿈틀거린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색 덩어리의 미적 관계가 아니다. 치유와 운명, 소통, 황홀 등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물감을 버무린 캔버스에 붓으로 수만 번 투명한 듯 맑은 색의 붓질을 해 완성하는 산은 발품을 팔아야 한다. 작가는 그동안 설악산 지리산 도봉산 팔공산 등 전국 명산을 답사하며 산을 추상 형태로 채색한 뚝심을 자랑해 왔다. 김 화백은 “우리의 산을 보면 색광이 나온다”며 “청아한 산의 에너지로 끝없는 욕심과 욕망으로 병들어가는 현대인의 영혼을 치료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