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두 영화에서 본 의로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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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brkim@karts.ac.kr >
새해 초부터 한국 영화 보기 바쁘다. 겨우 ‘신과 함께’를 보았더니 ‘1987’을 반쯤 의무로 봐야 할 일정이 생겼다. 영화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화제인 이 영화들은 과연 내용도, 형식도, 감동도 대단했다. 한국 영화의 역사가 이 두 편을 기점으로 구분될 것이라고 극찬하는 평론가도 있다.
잘 알려진 대로 한 편은 웹툰인 원작을 스크린화한 판타지다. 다른 한 편은 너무나 처절한 역사적 진실을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다룬 영화다. 장르뿐 아니라 영화가 던지는 현실적 무게나 메시지도 판이하다. 그런데도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의로운 죽음’을 결정적 소재로 다룬다는 점이다.
신과 함께는 의로운 소방대원의 죽음으로 시작해 사후세계 묘사를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다.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CG)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소재는 오래된 불교 교리에 근거하고 있다. 윤회를 믿는 불교는 인간이 죽으면 영혼은 일단 ‘명부’에 간다고 한다. 명부에는 10명의 대왕이 있는데, 7명의 대왕은 7일마다 한 번씩 생전의 업보를 따져 판정한 뒤 다시 태어날 곳을 결정한다. 여기서도 유보된 악인은 다시 사후 100일, 1주기, 2주기에 최종 판정을 한다. 살아 있는 자손이 49재를 성대하게 올리는 이유는, 보통 고인이 대개 이 시점에 환생의 등급을 판정받기 때문이다. 영화 역시 49일째 주인공이 환생을 판정받는 거로 끝을 맺는다. 이미 제작된 2편은 또 다른 의로운 죽음과 그 사후세계를 다룬다고 한다.
1987은 박종철의 고문치사로 시작해 이한열의 공권력 타살로 끝을 맺는다. 두 열사의 죽음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었으며,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빚이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은 두 열사가 아니라 유명 무명의 살아있는 의인들이다. 영화 내용도 바로 그들의 갈등과 헌신의 드라마다. 비록 물리적인 죽음은 아니지만, 죽음에 버금가는 수많은 이들의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민주화의 결실을 볼 수 있었다. 영화는 6월 항쟁의 승리와 직선제 개헌으로 끝을 맺지만, 오히려 그 후의 현대사가, 즉 계속된 군사 독재의 프레임과 반복되는 사회적 저항이 후편으로 연속 상영되는 느낌이다.
두 영화의 다름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다가온다. 자신과 가족을 구원하는 의로운 죽음이란 픽션에 불과하다. 생전의 자신에게 끔찍한 고통이며, 남겨진 가족에게 찢어지는 슬픔일 뿐이다. 그러나 그 죽음이 사회에 자유와 정의를 가져왔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개인의 희생이 오히려 사회적 구원이 된다는 것. 두 영화가 내게 던지는 메시지다.
김봉렬 <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brkim@karts.ac.kr >
잘 알려진 대로 한 편은 웹툰인 원작을 스크린화한 판타지다. 다른 한 편은 너무나 처절한 역사적 진실을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다룬 영화다. 장르뿐 아니라 영화가 던지는 현실적 무게나 메시지도 판이하다. 그런데도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의로운 죽음’을 결정적 소재로 다룬다는 점이다.
신과 함께는 의로운 소방대원의 죽음으로 시작해 사후세계 묘사를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다.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CG)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소재는 오래된 불교 교리에 근거하고 있다. 윤회를 믿는 불교는 인간이 죽으면 영혼은 일단 ‘명부’에 간다고 한다. 명부에는 10명의 대왕이 있는데, 7명의 대왕은 7일마다 한 번씩 생전의 업보를 따져 판정한 뒤 다시 태어날 곳을 결정한다. 여기서도 유보된 악인은 다시 사후 100일, 1주기, 2주기에 최종 판정을 한다. 살아 있는 자손이 49재를 성대하게 올리는 이유는, 보통 고인이 대개 이 시점에 환생의 등급을 판정받기 때문이다. 영화 역시 49일째 주인공이 환생을 판정받는 거로 끝을 맺는다. 이미 제작된 2편은 또 다른 의로운 죽음과 그 사후세계를 다룬다고 한다.
1987은 박종철의 고문치사로 시작해 이한열의 공권력 타살로 끝을 맺는다. 두 열사의 죽음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었으며,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빚이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은 두 열사가 아니라 유명 무명의 살아있는 의인들이다. 영화 내용도 바로 그들의 갈등과 헌신의 드라마다. 비록 물리적인 죽음은 아니지만, 죽음에 버금가는 수많은 이들의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민주화의 결실을 볼 수 있었다. 영화는 6월 항쟁의 승리와 직선제 개헌으로 끝을 맺지만, 오히려 그 후의 현대사가, 즉 계속된 군사 독재의 프레임과 반복되는 사회적 저항이 후편으로 연속 상영되는 느낌이다.
두 영화의 다름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다가온다. 자신과 가족을 구원하는 의로운 죽음이란 픽션에 불과하다. 생전의 자신에게 끔찍한 고통이며, 남겨진 가족에게 찢어지는 슬픔일 뿐이다. 그러나 그 죽음이 사회에 자유와 정의를 가져왔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개인의 희생이 오히려 사회적 구원이 된다는 것. 두 영화가 내게 던지는 메시지다.
김봉렬 <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brkim@karts.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