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리더' 행보
자신감 넘치는 어투로 수소차 등 시장 전망 설명
'송곳 질문'도 여유있게 답변
명확한 미래차 전략
"우선 시장 넓히는게 중요… 경쟁사와도 함께 가겠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이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호텔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8’ 현대차 프레스 콘퍼런스 직후 대뜸 기자에게 다가와 건넨 말이다. 당황한 기자는 “잘 봤습니다”며 한발 물러선 뒤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다시 전열(?)을 정비해 대화를 나눠본 정 부회장은 글로벌 기업의 여느 최고경영자(CEO) 못지않은 식견과 매너를 보여주었다.
◆외신기자들과 스탠딩 문답
이날 행사장을 둘러보는 그의 행보 역시 거침이 없어 보였다. 현대차는 이날 차세대 수소연료전기차 넥쏘(NEXO)를 CES 무대에서 공개했다. 5분 충전으로 600㎞를 넘게 달릴 수 있는 미래 친환경차다. 정 부회장은 콘퍼런스 내내 구석에 조용히 앉아 양웅철 현대차그룹 연구개발총괄 부회장과 이기상 환경기술센터장(전무) 등의 발표를 담담하게 지켜보기만 했다.
행사가 끝나자 외신기자들이 정 부회장을 에워쌌다. 당황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유창한 영어 실력을 뽐내며 주변의 이목을 끌었다. 더듬거리는 ‘콩글리쉬’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화술로 막힘 없이 질문을 받아넘겼다. 말투도 예전과 조금 달라 보였다.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한 시간 가까이 서서 영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까다로운 질문도 피하지 않았다.
답은 명확하고 논리적이었다. 그는 외신기자들에게 “우선 미래차는 시장을 넓혀 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시장 확대를 위해) 도요타나 폭스바겐 등은 경쟁자이면서도 함께 가야 하는 대상”이라고 말했다. 미래차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선 어느 한쪽과만 동맹을 공고히 하기보다는 분야별로 다양한 대상과 손을 잡고 함께 시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뜻으로 읽혔다.
수소차 시장 전망에 대해선 낙관했다. 그는 “수소차가 빠르게 늘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수소차와 전기차 비중이 함께 커질 것”이라며 “2025년부터는 수소차 수요가 많이 늘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현대차그룹은) 전기차와 수소차 투 트랙으로 갈 방침”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과묵하다는 평가는 옛말
경쟁 여건에 대한 냉정한 평가도 잊지 않았다. 기자들과 미래차 얘기를 주고받던 정 부회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We have a long way to go)”며 치열한 경쟁에 낀 현대차의 어려움을 에둘러 전했다. 블룸버그 등 외신들은 이 말을 앞세워 정 부회장 기사를 쏟아냈다.
행사 직후에는 전에 없던 여유까지 보였다. 한국 기자들이 ‘왜 영어를 잘하는 정 부회장이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하지 않았느냐’는 ‘농반진반’을 건네자 “전문가들이 하는 게 낫다”고 받았다. 정 부회장의 영어 실력은 그룹 전 임원을 통틀어 전혀 밀리지 않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행사장을 나설 때도 기자들이 달라붙었지만 뿌리치지 않았다. 과거 언론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지나칠 때가 많았던 그였다.
재계에선 정 부회장이 경영 보폭을 조금씩 넓혀 가면서 특유의 겸손함으로 회사의 대소사를 두루 챙기는 세심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의선 부회장은 아마 국내 오너 기업인 중 회사 직원들은 물론 밖에서도 두루 인정받는 몇 안 되는 경영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의 발걸음은 지난해부터 점점 빨라지고 있다.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터키, 이스라엘, 멕시코, 인도, 유럽 등을 거의 매달 오가며 시장 상황을 점검해왔다. 지난달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일정에 따라 충칭 공장(5공장)을 함께 돌기도 했다. 올 들어선 4년 연속 CES를 찾았다. 엔비디아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 및 부품사, 정보기술(IT) 기업들의 행사장을 둘러보고 있다. 11일께 로스앤젤레스 외곽에 있는 미국판매법인(HMA)에 들러 시장 상황을 점검하고 현안을 보고받을 것으로 전해졌다.
라스베이거스=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