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금융지주 및 은행의 사외이사 후보군 관리를 은행연합회에 맡기려는 것은 금융회사를 관치의 영역 안에 둬야 한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은행의 경우 예금자 돈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만큼 최고경영자(CEO) 선임권이 있는 사외이사 구성에 관여할 수밖에 없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은행들은 주주의 이익을 위해 독립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경영진에 두는 것이 사외이사 제도의 취지인데 은행연합회에서 후보군을 관리하면 정부 입김이 더 세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정부 "사외이사가 경영진 견제해야" vs 금융사 "너무 지나친 간섭"
경영진 감시 위해 사외이사 도입

사외이사 제도는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로 본격 도입됐다. 경영진의 방만 경영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기업 부실이 초래됐다는 반성이 작용했다. 금융업계에서도 지난 10여 년 동안 은행법 개정을 통해 사외이사 제도를 다듬어왔다. 지난해에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시행으로 CEO를 비롯한 임원들의 자격 요건과 선임 절차 등도 더 엄격해졌다.

사외이사 제도는 계속해서 발전해왔지만 사외이사들의 독립성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비판의 포인트는 두 가지다. CEO가 사외이사 선임에 관여하면서 경영진의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과 관치의 통로로 작용한다는 문제제기가 동시에 이어졌다. 사외이사 후보군을 은행연합회에서 관리하도록 하는 것은 경영진의 거수기 역할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지만 동시에 정부 간섭이 과도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 농협금융지주, 우리은행 등에 관료 출신 낙하산 인사가 CEO로 올 수 있던 것도 정부가 사외이사 조직을 장악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 금융회사 임원은 “외국의 사외이사들은 철저히 주주의 권리를 대변하고 한국도 그 취지를 받아들여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했다”며 “하지만 은행연합회가 사외이사 후보군을 관리하게 되면 경영진을 통제하고 싶은 정부의 목소리를 사외이사들이 대변할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혁신위 “사외이사 다양화해야”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부터 사외이사 구성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CEO 선임권이 있는 사외이사들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강화해 승계 작업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중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도 기존의 CEO가 자신이 뽑은 사외이사들을 방패로 연임하려 한다고 비판해왔다.

정부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지난해 12월20일 발표한 권고안에서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가 회장 및 사외이사를 추천할 때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추천한 인재 풀(pool)을 회장 및 사외이사 후보군에 포함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혁신위는 “기존 회장의 (연임을 위한) 참호 구축을 효과적으로 방지하는 방법은 회장 후보 및 임추위 구성을 다양화하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최 위원장과 최 원장은 신년사에서 사외이사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사외이사 등 이사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강화해 이사회 운영이 실질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최 원장도 “사외이사나 감사 등 독립적 견제장치가 제대로 구축돼 있고 합리적으로 작동하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정인 연임 막으려 한다는 시각도

금융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특정 CEO의 연임을 막기 위해서라는 시각도 있다. 해당 금융회사의 실적이 나쁘지 않고, CEO의 도덕적인 결함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갑자기 지배구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데는 다른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금융당국은 금융사 회장이 사외이사를 추천하고, 이 사외이사가 회장의 연임을 결정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문제삼고 있다.

금융계는 KB·신한·하나·농협금융 등 4대 금융지주회사의 사외이사 구성을 보면 법조계와 학계, 관료 출신 등 전문성을 갖춘 인물들이 이미 다양하게 포진해 있어 별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다른 금융지주 관계자는 “사외이사 제도를 포함한 한국 금융회사들의 지배구조는 많이 선진화돼 있다”며 “제도를 자꾸 고칠 것이 아니라 운영 주체인 금융회사의 태도를 선진화하는 게 오히려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