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실체 없는 '4차 산업혁명론'의 민낯
올 한 해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4차 산업혁명’이었다. 지난해 3월 구글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 이후 한국 사회에 확산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은 올 들어 더 거세졌다. 지난 4월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주요 5개 정당은 4차 산업혁명을 키워드로 내세우고 구체적인 전략을 경쟁적으로 제시했다. 출판계도 선도적으로 대응했다. 지난해 30여 종, 올해는 200종이 넘는 관련 서적을 쏟아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은 ‘한국의 4차 산업혁명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그 문제점을 파헤친 책이다.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홍성욱 서울대 생명공학부 교수 등이 쓴 일곱 편의 글을 엮었다.

김 원장은 4차 산업혁명 실체의 비판과 이에 대한 반론을 허상론, 오류론, 결정론이란 세 가지 측면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다. 4차 산업혁명이 실체가 없는 허상이란 비판은 무엇보다 이 용어가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지닌다. 해외에서 4차 산업혁명이 큰 관심을 끄는 용어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디지털 기술을 통한 혁신’을 지칭하는 키워드로 미국에서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독일에선 ‘인더스트리 4.0’, 중국에선 ‘중국제조 2025’란 구호를 자주 사용한다.

홍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회자되는 4차 산업혁명이 ‘정치적 유행어’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각계각층에서 4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개선점으로 꼽는 것들이 이전의 요구 사항과 대동소이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문화콘텐츠 없이 4차 산업혁명 없다’ ‘주입식 교육 강요당하는 학생들, 머나먼 4차 산업혁명’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업 규제 개혁 방안’ 등을 다루는 토론회는 각각의 분야에서 절실한 요구를 4차 산업혁명이란 국가적 아젠다에 빗대어 표출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의 4차 산업혁명론이 낳은 사회·문화적 현상을 다양한 시각에서 깊이있게 들여다본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기술결정론적 담론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관점을 접해보고 싶은 독자들이 읽어볼 만하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