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질자원연구원 현장조사팀은 지난 17일 포항 북구 지진 피해 지역의 논과 밭에서 지반 약화 현상인 ‘액상화’가 일어나 모래와 진흙이 땅위를 뚫고나온 볼케이노(분출구)를 발견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제공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현장조사팀은 지난 17일 포항 북구 지진 피해 지역의 논과 밭에서 지반 약화 현상인 ‘액상화’가 일어나 모래와 진흙이 땅위를 뚫고나온 볼케이노(분출구)를 발견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제공
지난 15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일대에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진동과 함께 논에서 물이 솟구쳐 올랐다. 진흙과 모래가 솟아오른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포항 지진 이후 이처럼 딱딱했던 땅이 늪처럼 변하는 ‘액상화 현상’이 국내에서 처음 발견됐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16일부터 18일까지 포항 지역에서 벌인 현장 조사에서 액상화 현상의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인 샌드 볼케이노(모래 분출구)와 머드 볼케이노(진흙 분출구) 30여 개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분출구는 대부분 진앙 근처인 북구 흥해읍 일대에서 발견됐지만 멀리는 칠포해수욕장 근처에서도 발견됐다. 진앙 주변 5.5㎞에 집중된 양상이다. 분출구는 선 형태를 띠거나 원이나 타원 형태를 보였다. 타원 형태의 분출구는 대부분 긴쪽 지름이 수㎝ 정도지만 10m에 이르는 것도 있다.

지질연은 이들 분출구가 지반 전체가 액체처럼 되는 액상화 현상의 근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1953년 일본 학계가 제기한 액상화는 지진 같은 진동으로 땅속의 물이 빠지지 않고 고여 흙이 마치 액체처럼 반응하는 것으로 지상의 건물과 구조물을 위태롭게 한다. 약해진 지반을 뚫고 진흙이나 모래가 솟구쳐 오른다. 이런 액상화는 모래·흙 같은 토양 알갱이가 곱고 알갱이 간격이 넓은 지반, 얕은 지하수, 큰 지진 등 3박자가 맞으면 일어난다. 1964년 일본 니가타현 지진과 미국 알래스카주 지진 때 처음 발견됐는데 당시 지반이 무너지면서 교량이 넘어지고 아파트가 통째로 쓰러지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퇴적층이 있는 매립지나 해안가 등 연약지반에서도 액상화 발생 가능성이 상존한다. 앞서 지질연은 이번 지진 피해를 본 지역이 과거 바닷속에 있다 올라온 연약 지반이라고 발표했다. 김용식 지질연 선임연구원은 “지진 같은 큰 에너지를 받으면 지하수가 퇴적층에 압력을 가하면서 액상화된 지반 상부를 뚫는다”며 “단층과 지진 전문가뿐 아니라 지질학자 등 전 분야의 협력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지방도시의 액상화 위험도 예측도를 시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 지진에 따른 지반의 액상화 연구는 걸음마 단계다. 지난해 최재순 서경대 도시환경시스템공학과 연구팀은 경남 양산에서 규모 6.5 지진이 발생할 경우 액상화 영향으로 진앙에서 가까운 부산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진 서울과 수도권도 위험하다는 연구 결과를 냈다. 수도권 퇴적층에서 강진이 일어나도 한반도 남쪽에 큰 피해로 이어진다. 이번 포항 지진 이후 상당수 전문가가 한반도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최대 지진 규모를 6.5~7로 상향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다.

액상화가 한번 일어난 지역의 지반은 매우 약해진다. 추가 지진이 일어나면 큰 피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기상청은 포항 피해 지역의 액상화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 19일부터 땅을 파고 살펴보기로 했다. 결과가 나오는 데 한 달가량이 걸릴 전망이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