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통업계와 한국 유통업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대표적인 차이로 ‘규제’를 꼽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와 함께 17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 유통산업 발전방향’ 한·일 공동세미나를 열었다.

일본에서도 유통 규제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4년부터 2000년까지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를 담은 ‘대규모 점포법’이 시행됐다. 이날 발표자로 참가한 카와노 사토시 일본 센슈대 교수는 “대규모 점포법은 면적 1500㎡ 이상 점포에 대해 영업과 신규 출점을 제한했고 그 결과 소비자 후생 침해, 외국 기업에 대한 비관세 장벽으로서 부작용, 기존 출점자의 이익만 보호, 유통산업 경쟁구조 왜곡 등 여러 부작용으로 2000년 폐지됐다”고 말했다. 미국은 일본의 대규모점포법이 통상규범에 어긋난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바 있다. 이후 일본에서는 ‘대규모소매점포입지법’이 신설돼 대규모 점포의 영업규제가 사라졌다. 일부 지자체별로 상황에 맞는 사회공헌 방안을 제출하도록 하는 규제만 존재한다.

세미나에 참석한 양국 경제계와 학계 인사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 격변기를 맞은 유통기업들이 서비스 혁신을 이루도록 정부가 규제에만 몰두하지 말고 산업 생태계를 육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연승 단국대 교수는 “현재 유통산업은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쇼핑, 인공지능(AI), 빅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로 진화하면서 정보와 지식기반 플랫폼사업자로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러나 국내 유통산업은 여전히 대규모 점포에 대한 출점 및 영업규제 이슈가 지속하면서 혁신과 미래 투자에 대한 동력이 살아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전자상거래 등 유통플랫폼 사업을 지원하고, 4차 산업혁명 관련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는 등 적극적인 유통산업 육성정책을 펴는 동시에 생태계 관점에서 산업의 파이(pie) 자체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유통업계를 중심으로는 첨단 기술을 접목해 서비스 혁신을 이뤄내고 있는 사례들이 소개됐다. 이진성 롯데 미래전략연구소 소장은 AI를 활용해 소비자 트렌드를 분석해 고객 수요에 최적화된 새로운 빼빼로 상품을 출시한 사례와 정맥으로 입장하고 정맥으로 결제가 진행되는 스마트 편의점의 사례를 소개했다. AI를 통한 백화점 지능형 쇼핑 어드바이저와 스마트 인터페이스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쇼핑도 고도화할 예정이다. 이 소장은 “성공적 유통혁신을 위해서는 변화에 대한 믿음과 선제적 투자, 외부와 협력할 수 있는 오픈 이노베이션, 데이터 등을 관리하는 내재적 역량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