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보잉과 에어버스의 전쟁
윌리엄 보잉은 191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아메리칸 에어 미트(American Air Meet)’라는 에어쇼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비행기 제작에 꿈을 갖게 된 그는 라이트 형제를 비롯해 여러 조종사를 찾아다니며 비행기 탑승을 부탁했지만 거절 당했다. 그러던 중 1915년 시애틀에서 글렌 마틴(미국 방위산업체 록히드 마틴 창업 주역)이 만든 비행기에 탈 기회를 얻었다. 낡은 비행기 조종석 옆 작은 공간에 몸을 비집고 타 본 뒤 그는 “이것보다 나은 비행기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1916년 보잉을 출범시켰다.

군용기 생산으로 사업을 시작한 보잉은 1차 세계대전 때 ‘모델C’, 2차 세계대전 땐 B17, B29 폭격기를 만들어 명성을 날렸다. 1958년 B707을 선보이며 제트 여객기 시대를 열었다. 1965년과 이듬해 내놓은 B737, B747점보가 히트하면서 보잉은 세계 시장에서 독주체제를 구축했다.

B737을 최초로 구매한 항공사는 독일 루프트한자로, 1965년 21대를 주문했다. 유럽 국가들에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럽 비행기 제조사들의 경쟁력은 보잉에 한참 못 미쳤다.

국가별로는 보잉에 대항할 수 없다고 판단한 프랑스와 독일은 1969년 에어버스를 출범시키면서 A300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영국도 1978년 합류했다. 에어버스는 초창기엔 보잉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1984년 중거리용 A320을 내놓으면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두 회사가 본격 경쟁체제로 들어간 것은 2007년부터다. 그해 에어버스는 500석 규모의 초대형 여객기 A380을 선보인 뒤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에어버스가 크기를 강조하자 보잉은 ‘꿈의 비행기’ B787을 내놓으며 기술력을 부각시켰다.

에어버스는 연료효율을 비롯한 성능을 높이고 가격은 낮춘 A330네오로 다시 맞불을 놨다. 보잉은 B737맥스시리즈로 대응하는 등 두 회사는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군용기 경쟁도 치열하다. 2015년 한국 공군 공중급유기 경쟁입찰에서 에어버스(A330 MRTT)가 보잉(KC-46A)을 제쳐 주목받기도 했다.

에어버스는 그제 미국 인디고 파트너스에 495억달러(약 54조5737억원) 규모의 항공기 430대를 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질세라 보잉도 두바이에어쇼에서 보잉 787-10 드림라이너 40대를 에미레이트항공에 팔기로 한 것을 비롯해 총 270억달러(약 29조7675억원) 규모의 만만치 않은 판매실적을 올렸다.

이번 수주전에 심혈을 기울였던 에어버스는 보잉에 지자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도 거절했다고 한다.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두 회사의 경쟁이 항공업계 발전을 가져올 것은 확실하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