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 '개혁보수' 실험 결국 좌초하나… 시련·추락의 286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33석에서 11석으로…창당 10개월도 안 돼 교섭단체 붕괴
1차 탈당→대선 패배→이혜훈 낙마→내분 격화→2차 탈당 개혁보수의 기치를 내걸고 지난 1월 닻을 올린 바른정당이 출항 10개월도 안 돼 좌초했다.
6일 통합파 의원 9명의 집단 탈당으로 바른정당은 의석수가 11명으로 줄어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잃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지난 1월 24일 대안보수로 자리매김하겠다며 창당한 지 286일 만이다.
바른정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옛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내 비박(비박근혜)계가 중심이 돼 탄생했다.
신생 정당이지만 잠재력 면에서는 정치권의 큰 주목을 받았다.
소속 의원만 33명으로, 창당하자마자 원내 제4당 자리를 차지했고 남경필 경기도지사·원희룡 제주도지사·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차세대 대권 잠룡으로 분류됐던 인물들도 속속 결집하며 세를 급속도로 키웠다.
무엇보다 유력 대선주자였던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이 '제3지대'를 구축하고 바른정당과 당대 당 통합을 하거나 입당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더욱 이목이 쏠렸다.
탄핵 정국 하에서도 보수정권을 잉태해내는 기적을 이룰 수 있을 거란 기대감마저 돌았다.
그러나 대권 주자로 영입하려 했던 반 전 총장이 지난 2월 돌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바른정당은 첫 시련을 맞았다.
당은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대선경선 후보로 경쟁시키며 흔들리는 당을 잡아줄 새 구심점을 키우는 데 안간힘을 썼지만, 여건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필두로 야권으로 기울어진 대선판에서 유 의원와 남 지사의 2파전은 좀처럼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바른정당은 대선을 42일 앞두고 주요 정당 중 가장 먼저 유 의원을 대선후보로 확정, 일찌감치 대선행보에 돌입하는 강수를 뒀다.
그러나 유 의원의 지지율은 줄곧 5% 안팎에 머물렀고 급기야 당내에서는 한국당, 국민의당과 3자 단일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 의원이 대선 레이스 완주 의사를 분명히 밝히면서 내부 동요가 심해졌다.
정치적 탈출구를 모색하던 단일화파 의원들은 탈당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28일 이은재 의원에서 시작된 '역탈당' 도미노는 결국 불과 대선 일주일 전인 5월 2일 13의 집단 탈당으로 이어졌다.
창당한 지 약 석 달 만에 교섭단체 지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13명 집단 탈당'에 이름을 올렸던 황영철 의원이 다음 날 탈당 철회를 선언하고 나서면서 의원 20명을 유지, 간신히 교섭단체 지위를 유지하며 한숨을 돌려야 했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른정당은 대선에서 참패하면서 다시금 위기를 맞았다.
유 의원의 대선 득표율은 6.76%로, 한국당 홍준표 후보(24.03%)에도 한참 못 미치는 '대패'였다.
바른정당은 대선 참패 이후 주요 정책에서 한국당과의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며 보수적통(嫡統)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요지부동하는 당 지지율 탓에 한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보수통합론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당장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이 상태로는 치를 수 없다는 원성이 당내 통합파들 사이에서 다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1차 탈당 사태가 벌어진 지난 '5·9 대선'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6월 전당대회에서 대표적 자강파인 이혜훈 의원을 대표로 한 새 지도부가 완성되면서 잠시 당내 갈등은 진정 국면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으나 갈등은 좀처럼 봉합되지 않았다.
이 전 대표가 금품수수 의혹에 연루돼 74일 만에 낙마하면서, 통합파와 자강파간 내분은 극으로 치달았다.
이들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 여부를 놓고 강대강 대치를 벌였다.
당시 비대위원장에는 유승민 의원이 유력한 상황이었는데 이를 두고 김무성 의원을 필두로 한 통합파들의 격렬히 반발했다.
유 의원이 당권을 잡는 한 보수통합 논의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다행히 자강파와 통합파간 극적 합의로 11월 조기 전당대회를 치르기로 했지만, 이제는 당 밖에서 가만두지 않았다.
줄곧 흡수통합을 주장하던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달 1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1월 전대 이전 당대 당 통합을 하자며 전향적인 러브콜을 보냈다.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은 물론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에 대한 징계조치에 들어가면서 통합의 명분을 만드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했다.
이에 보수통합 논의는 급물살을 탔고 그럴 수록 통합파와 자강파간 갈등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통합파는 한국당과 마찬가지로 당에 이른바 '보수대통합 추진위원'을 선정, 당대 당 통합 협상에 나서려했지만 자강파 의원들의 반발로 무산되자 결국 탈당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유승민 의원을 중심으로 뭉친 자강파는 앞서 합의한 '11·13 전당대회'를 개최해 새 지도부가 들어선 다음 통합 논의를 하는 게 순리라고 맞섰다.
이런 가운데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비롯한 자강파 일부는 분당만큼은 막아야 한다며 전대 연기를 전제로 한 한국당과의 통합 전대론을 중재안으로 내걸었으나 '골든 타임'은 이미 지난 상황이었다.
이들은 전날 열린 사실상 마지막 의원총회에서 양측을 끝까지 설득하려 했으나 통합파와 일부 강경 자강파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였다.
급기야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정운천, 박인숙 의원과 박유근 당 재정위원장 등 3명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경선 중도하차를 선언, 전대는 그야말로 반쪽짜리로 치러지게 됐다.
일각에서는 추가 탈당 의원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어 바른정당은 그야말로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이게 됐다.
/연합뉴스
1차 탈당→대선 패배→이혜훈 낙마→내분 격화→2차 탈당 개혁보수의 기치를 내걸고 지난 1월 닻을 올린 바른정당이 출항 10개월도 안 돼 좌초했다.
6일 통합파 의원 9명의 집단 탈당으로 바른정당은 의석수가 11명으로 줄어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잃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지난 1월 24일 대안보수로 자리매김하겠다며 창당한 지 286일 만이다.
바른정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옛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내 비박(비박근혜)계가 중심이 돼 탄생했다.
신생 정당이지만 잠재력 면에서는 정치권의 큰 주목을 받았다.
소속 의원만 33명으로, 창당하자마자 원내 제4당 자리를 차지했고 남경필 경기도지사·원희룡 제주도지사·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차세대 대권 잠룡으로 분류됐던 인물들도 속속 결집하며 세를 급속도로 키웠다.
무엇보다 유력 대선주자였던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이 '제3지대'를 구축하고 바른정당과 당대 당 통합을 하거나 입당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더욱 이목이 쏠렸다.
탄핵 정국 하에서도 보수정권을 잉태해내는 기적을 이룰 수 있을 거란 기대감마저 돌았다.
그러나 대권 주자로 영입하려 했던 반 전 총장이 지난 2월 돌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바른정당은 첫 시련을 맞았다.
당은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대선경선 후보로 경쟁시키며 흔들리는 당을 잡아줄 새 구심점을 키우는 데 안간힘을 썼지만, 여건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필두로 야권으로 기울어진 대선판에서 유 의원와 남 지사의 2파전은 좀처럼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바른정당은 대선을 42일 앞두고 주요 정당 중 가장 먼저 유 의원을 대선후보로 확정, 일찌감치 대선행보에 돌입하는 강수를 뒀다.
그러나 유 의원의 지지율은 줄곧 5% 안팎에 머물렀고 급기야 당내에서는 한국당, 국민의당과 3자 단일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 의원이 대선 레이스 완주 의사를 분명히 밝히면서 내부 동요가 심해졌다.
정치적 탈출구를 모색하던 단일화파 의원들은 탈당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28일 이은재 의원에서 시작된 '역탈당' 도미노는 결국 불과 대선 일주일 전인 5월 2일 13의 집단 탈당으로 이어졌다.
창당한 지 약 석 달 만에 교섭단체 지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13명 집단 탈당'에 이름을 올렸던 황영철 의원이 다음 날 탈당 철회를 선언하고 나서면서 의원 20명을 유지, 간신히 교섭단체 지위를 유지하며 한숨을 돌려야 했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른정당은 대선에서 참패하면서 다시금 위기를 맞았다.
유 의원의 대선 득표율은 6.76%로, 한국당 홍준표 후보(24.03%)에도 한참 못 미치는 '대패'였다.
바른정당은 대선 참패 이후 주요 정책에서 한국당과의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며 보수적통(嫡統)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요지부동하는 당 지지율 탓에 한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보수통합론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당장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이 상태로는 치를 수 없다는 원성이 당내 통합파들 사이에서 다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1차 탈당 사태가 벌어진 지난 '5·9 대선'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6월 전당대회에서 대표적 자강파인 이혜훈 의원을 대표로 한 새 지도부가 완성되면서 잠시 당내 갈등은 진정 국면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으나 갈등은 좀처럼 봉합되지 않았다.
이 전 대표가 금품수수 의혹에 연루돼 74일 만에 낙마하면서, 통합파와 자강파간 내분은 극으로 치달았다.
이들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 여부를 놓고 강대강 대치를 벌였다.
당시 비대위원장에는 유승민 의원이 유력한 상황이었는데 이를 두고 김무성 의원을 필두로 한 통합파들의 격렬히 반발했다.
유 의원이 당권을 잡는 한 보수통합 논의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다행히 자강파와 통합파간 극적 합의로 11월 조기 전당대회를 치르기로 했지만, 이제는 당 밖에서 가만두지 않았다.
줄곧 흡수통합을 주장하던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달 1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1월 전대 이전 당대 당 통합을 하자며 전향적인 러브콜을 보냈다.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은 물론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에 대한 징계조치에 들어가면서 통합의 명분을 만드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했다.
이에 보수통합 논의는 급물살을 탔고 그럴 수록 통합파와 자강파간 갈등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통합파는 한국당과 마찬가지로 당에 이른바 '보수대통합 추진위원'을 선정, 당대 당 통합 협상에 나서려했지만 자강파 의원들의 반발로 무산되자 결국 탈당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유승민 의원을 중심으로 뭉친 자강파는 앞서 합의한 '11·13 전당대회'를 개최해 새 지도부가 들어선 다음 통합 논의를 하는 게 순리라고 맞섰다.
이런 가운데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비롯한 자강파 일부는 분당만큼은 막아야 한다며 전대 연기를 전제로 한 한국당과의 통합 전대론을 중재안으로 내걸었으나 '골든 타임'은 이미 지난 상황이었다.
이들은 전날 열린 사실상 마지막 의원총회에서 양측을 끝까지 설득하려 했으나 통합파와 일부 강경 자강파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였다.
급기야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정운천, 박인숙 의원과 박유근 당 재정위원장 등 3명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경선 중도하차를 선언, 전대는 그야말로 반쪽짜리로 치러지게 됐다.
일각에서는 추가 탈당 의원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어 바른정당은 그야말로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이게 됐다.
/연합뉴스